"우리가 제2의 세종".. 혁신도시 부동산 긴 잠 깨고 '꿈틀'

최상현 기자 2021. 2. 1.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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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던 집값이 작년 말부터 갑자기 7000만원씩 올랐어요. 이러다 세종시처럼 한번에 치고 올라가는 게 아니냐며 다들 들떠 있어요."

지난 2015년 충북 음성군 맹동면 충북혁신도시에 아파트 2채를 분양받았다는 A(51)씨는 "이전한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다른 일자리도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생겨나면서 인구가 모이는 것 같다. 전세 매물이 사라지더니 매매가격도 급등하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전국 집값이 오르며 잠잠하던 혁신도시 부동산 시장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전북 전주시 장동 ‘전북혁신도시대방노블시티’ 앞에 이사업체 차량이 서있다. /네이버거리뷰

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조성 이후 수년 간 침체에 빠져있었던 지방 혁신도시 부동산 시장에서 최근 무서운 집값 상승세가 보이고 있다. 실수요 측면에서는 새 아파트가 집중된 신규 택지지구로 주거여건이 좋은데다 고용 여건도 상대적으로 양호해 인근 인구가 유입되고 있다. 여기에 비규제지역이라는 장점이 있어 투자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도 일어나는 양상이다.

현재 조성된 전국 혁신도시 10곳 가운데 비규제지역은 7곳이다. 광역시 내에 있는 부산·울산우정·대구신서 혁신도시는 규제지역이다. 나머지 충북(진천군, 음성군)·강원(원주)·경북(김천)·경남(진주)·전북(전주)·광주전남(나주)·제주(서귀포) 혁신도시는 모두 지방 시·군 단위에 소재한 덕분에 규제지역 지정을 피했다.

정부는 과밀화된 수도권의 인구를 분산하고 지방 자립을 돕기 위해 지난 2007년부터 전국 10개 혁신도시를 개발했다. 혁신도시 활성화를 위해 112개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한편 민간 기업·학교·연구소 유치도 추진했다.

2013년부터 혁신도시 입주가 본격화됐지만, 수도권 인구 분산 효과는 예상만큼 나타나지 않았다.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들이 교육·생활 인프라가 부족한 혁신도시에 정착하는 대신, 가족은 수도권에 두고 본인만 단신부임하는 경우가 많아 ‘기러기 아빠만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산학연 유치도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아 혁신도시 집값은 수년 간 박스권을 맴돌거나 분양가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부진했던 혁신도시 부동산 시장은 최근 들어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원 원주시 혁신도시 반곡동에 소재한 ‘힐데스하임5단지’ 전용면적 84㎡는 지난 1월 18일 4억6000만원에 거래되며 한달 새 1억원 이상 올랐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12월 11일 3억5500만원에 거래된 바 있다. 이는 5년 전인 2015년 12월의 3억500만원에서 크게 오르지 않은 가격이었다.

이같은 급등세는 광주전남혁신도시를 제외한 비규제 혁신도시 6곳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해 12월 13일까지만 해도 2억6000만원에 거래됐던 경북 김천시 율곡동 ‘엠코타운더플래닛’ 전용 84㎡는 1월 26일 3억4900만원에 매매됐다. 경북 진주시 충무공동 ‘대방노블랜드더캐슬’과 제주 서귀포시 서호동 ‘서귀포혁신도시 LH1단지’, 충북 진천군 덕산읍 ‘충북혁신리슈빌’ 등도 한두달 전보다 6000만~7000만원 높은 가격에 팔렸다.

심지어 ‘10억 클럽’을 목전에 둔 아파트도 나왔다. 전북 전주시 장동 ‘전북혁신도시대방디엠시티’ 전용면적 119㎡는 지난해 12월 11일 9억9000만원에 거래됐다. 최근에 입주한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3억4160만원으로 짓자마자 3배 가까이로 오른 셈이다.

다만 광주전남혁신도시는 지역 부동산 시장이 부진한 영향 탓에 여전히 고착 상태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중흥S클래스센트럴’ 전용면적 84㎡의 최근 거래가는 3억7000만원으로 2018년 1월(3억6000만원)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나주 아파트 매매가격은 23개월 연속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초기에는 빈약했던 혁신도시의 생활 인프라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인근에 비해 우수한 정주여건과 고용시장이 돋보이기 시작했다"면서 "수도권 인구를 유치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대신 인근 지역 인구를 빨아들이면서 실수요와 투자수요 모두 유입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국토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이후 10개 모(母)도시에서 혁신도시로 유출된 인구는 9만2996명으로 혁신도시 인구의 51%를 차지했다. 반면 수도권에서 유입된 인구는 2만8717명으로 16%에 불과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전국적으로 미분양이 급감하면서 경기도와 지방에 주택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지방에서는 신축이 많고 새로운 거점 도시로 발돋움한 혁신도시가 부동산 가격을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원석 중앙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투자가 유입될 만큼 수요가 받쳐주는 지방 광역시 도심은 모두 규제지역으로 묶인 탓에 비규제지역이면서 발전 가능성도 높은 혁신도시가 돋보일 수 밖에 없다"면서도 "지방 구도심이 버려지고 혁신도시에만 인구가 집중되는 추세는 우려스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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