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시진핑 묻고, 바이든 답하다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2021. 2. 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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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포기하라"는 시 주석 요구에 "미중경쟁은 21세기의 본질적 특징" 응수..대중정책 키워드 '전략적 인내' 제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지 1주일도 안돼 미중 간에 미묘한 문답이 오갔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1월25일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개막 연설에서 상대가 누구라고 언급하지 않은 채 “신냉전의 낡은 길을 걸어서는 안된다”고 먼저 한마디 했죠.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은 21세기의 본질적 특징”이라고 받아쳤습니다.

선문답처럼 보이는 이 대화에 미중관계를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이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강대국 정상들이 전화 회담 같은 공식 외교 절차를 제쳐두고 이런 문답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죠. 이 역시 미중 경쟁시대가 낳은 새로운 풍경일 겁니다.

◇시진핑, 다보스포럼 연설 통해 미국에 질문

시 주석의 다보스포럼 연설은 20분 정도였는데, 빤한 얘기였죠.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세계가 위협받고 있고 세계 경제도 깊은 침체 속으로 빠져 들고 있으니 서로 잘 협력하자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빤한 연설 속에 미국을 겨냥한 메시지를 담았죠. 그 중 하나는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버리고 윈윈의 길로 가자’는 겁니다. 중국은 서방국가들과 역사와 문화, 사회제도가 다르니 공산당 독재 비판, 신장 위구르족 인권 문제 제기 등으로 시비 걸지말라는 얘기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조선일보DB

두번째 메시지는 연설 중간쯤 “다자주의를 지키고 실천해야한다”고 하면서 나왔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소규모 그룹을 구성해 신냉전을 외치면서, 다른 나라를 배척하고 위협하고 겁주고, 걸핏하면 관계단절과 거래 중단, 제재를 꾀하면서 인위적으로 상호 관계를 격리하고 심지어 단절하는 건 세계를 분열과 대립으로 몰고갈 뿐이다.”

지난 2년간 계속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압박정책을 비난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당신도 그렇게 할 것이냐’고 물은 거죠. 재미있는 건 이런 얘기를 하면서 한번도 ‘미국’을 거론하지 않은 점입니다. 말 안 해도 전세계가 아는 일 아니냐는 주장이죠.

◇백악관 대변인 원고에 담긴 바이든의 대답

그로부터 몇시간 뒤에 있었던 백악관 대변인 브리핑에서는 당연히 시 주석 연설 관련 질문이 나왔습니다.

사키 대변인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이 바뀔 것이냐’는 질문에 “우리의 중국에 대한 접근방식은 지난 수개월 동안 그래왔던 것과 같다”고 운을 뗐죠. 그러면서 “우리는 중국과 엄중한 경쟁 상태에 있으며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은 21세기의 본질적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또 “지난 수년간 중국은 안으로는 독재가 점점 강화되고, 대외적으로는 더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다”면서 “베이징은 우리의 안보와 번영, 가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도 했죠.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압박 기조를 당분간 유지하면서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겁니다. 시 주석이 비판한 ‘신냉전’이 불가피하다는 거죠. 화웨이 제재 해제, 대중 관세 인하 여부 등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며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1월 25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젠 사키 대변인이 준비해온 원고를 보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중국문제 전략적 인내 갖고 접근할 것”

사키 대변인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대변인을 지낸 베테랑입니다. 기자들의 어지간한 질문에는 원고 없이도 능숙하게 답변하죠. 그런데 이날 중국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미리 준비한 원고를 거의 그대로 읽었습니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미리 지침을 받고 온 거죠.

사키 대변인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정책 키워드인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는 말도 언급했습니다. “언급하기에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우리는 중국 문제를 전략적 인내를 갖고 접근하려 한다”고 했죠.

‘전략적 인내’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압박정책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말입니다. 쉽게 대화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압박과 제재를 지속하면서 원하는 전략적 목표를 이뤄내겠다는 거죠.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정책 키워드인 '전략적 인내'에 대한 중국 내 전문가들의 분석을 다룬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의 1월26일자 기사. /글로벌타임스 캡처

◇“따뜻한 물로 서서히 죽이겠다는 거냐”

중국에서는 갖가지 해석이 나옵니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과 뉴욕 총영사관에서 현직 외교관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허웨이원 중국국제무역학회 상무이사는 관영 글로벌타임스 인터뷰에서 “인내하겠다는 건 바이든 대통령이 부처가 되겠다는 말이 아니라 더 신중하고 확실하며 체계적이고 제도화된 대중 압박 전술을 구사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압박정책의 본질은 바뀐 게 없다”고 했죠.

글로벌타임스는 재미있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뜨거운 물’로 단숨에 개구리를 죽이려 했던 것과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따뜻한 물’로 서서히 죽이려 한다는 거예요.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급진적이고 성급한 정책을 쓰지 않겠다는 것일 뿐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을 때려 눕히겠다는 전략 자체는 바뀐 게 없다”는 겁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국민 분열 통합, 경제 회복 등 국내 이슈가 산적해 있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문제를 뒤로 미뤄놓으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와요.

바이든 대통령 취임 1주일 사이에 벌어진 양국 간 문답으로 분명해진 건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가장 큰 경쟁상대로 규정한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적 목표를 이어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만 안으로는 초당적으로 지혜를 모으고, 밖으로는 동맹을 규합해 좀더 세련되고 촘촘한 그물망을 짜려고 하겠죠.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제대로 통할지 여부는 미지수입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압박정책도 성공했다는 평가는 못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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