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베를린 도로 점령한 트랙터 600대.."농업에 미래가 없다"
■베를린에 집결한 트랙터 600대…"친환경농업 정책에 농민 다 죽는다"
독일 연방식품농업부 앞 도로에 트랙터들이 길게 주차돼 있습니다. 정부의 농업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독일 전 지역에서 몰려 든 트랙터 600대 중 일부입니다. 식품농업부 앞에 집결한 트랙터는 100대 안팎, 나머지는 베를린 시내 곳곳 중요 포인트에 분산돼 시위를 벌였습니다.
지난달 26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시위에서 농민들은 베를린으로부터 멀게는 800km 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트랙터를 직접 운전하고 왔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경찰 통제 아래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손팻말이나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농민들의 요구 사항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됩니다. 농가 보조금 인상과 친환경농업 패키지 법안의 유예입니다. 농가 보조금 인상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이해되지만 '친환경농업정책의 유예' 주장은 좀 낯설기도 합니다.
독일 연방정부는 2019년에 농업 환경규제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동물복지 표시제와 곤충 보호 프로그램이 포함된 이른바 '농업 패키지' 법안입니다. 이 법안들은 지난해 연방의회를 통과했는데요, 농민들은 이 정책들이 과도한 환경규제라고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환경규제로 비용 증가…생존의 위협"
이 정책의 핵심은 비료와 농약 사용 규제 강화입니다. 비료와 농약을 과도하게 많이 사용하게 되면 우선 농지에 질소가 잔류하게 되고 이는 지하수 오염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토양이 오염되면 온실효과의 주범 중 하나인 아산화질소 배출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죠. 비료와 농약외에도 축산 분뇨에서는 메탄이 발생하니 전통적인 농업 방식은 기후변화를 부른 원인 중 하나였다는 것이 농업정책에 환경 규제가 들어온 배경이 됐습니다. 여기에 생태계를 지탱하는 곤충 개체수의 심각한 감소가 비료와 농약의 과도한 사용에서 비롯됐다는 논리가 더해졌던 것입니다.
독일은 유럽 최대 낙농국이자 세계 3위의 농식품 수출입국입니다. 이런 독일에 EU 집행위원회는 꾸준히 농업 환경 문제에 대한 압력을 가해왔습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이 비료 문제였습니다. 2019년 9월까지 EU 집행위원회의 질산염 지침을 준수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지 못했을 경우 독일 정부는 매일 최대 85만 유로, 약 11억 5,0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도 있었습니다. '농업 패키지' 법안은 그런 EU의 압박에 대한 독일의 조치 중 하나인 셈이죠.
하지만 이런 농업 정책의 변화를 농민들은 생존의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 생산 비용이 증가하고 있는데 산지 가격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독일 같은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고 생산된 저렴한 수입 농산물과 경쟁을 해야 하고, 유통업체들은 자국 농산물 매입 가격을 수입 농산물 가격에 맞추려고 한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정부 정책으로 자신들이 '환경파괴범'처럼 비치는 것도 농민들을 화나게 했습니다.
농민들이 스벤야 슐체 환경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는 것도, 트랙터들이 세계자연기금(WWF: World Wide Fund for Nature) 베를린 지부 앞 도로를 메운 것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속가능한 농업" VS "미래가 없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농가에서 질소비료를 과잉으로 사용할 때 토양 내 질소가 잔류하게 되는데 이게 온실가스의 주범인 아산화질소의 원인이 됩니다. 비료 규제는 추가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또한, 독일 전역에서 곤충과 조류가 심각하게 감소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원인으로 제초제가 지목됩니다. 농약 규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농민들은 이대로라면 농가가 '절멸'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네덜란드 접경 마을 레어에서 낙농업을 하고 있는 디르크 브루커스 씨는 트랙터로 560km를 운전하고 왔습니다. 아들과 딸을 모두 데리고 말입니다. 브루커스씨는 정부 규제를 비판하며 정부가 농가에 더 많은 금전적 지원을 해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함께 인터뷰에 응해준 아들 얀네스 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농민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농업에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저희의 벌이 정도로 일하면 농업은 사라집니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친환경 규제 정책을 펴고 있는 독일 정부와 노동의 값을 제대로 쳐달라는 농민들의 요구. 하루아침에 결론이 날 일은 아닙니다. 기후변화라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지만 당장의 경제적 고통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니까요.
김귀수 기자 (seowoo1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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