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만 티 나는 건 싫다'.. 휴대폰 끼고 살고 식사는 대충 ['창간 32' - 1인 가구 900만 시대]

엄형준 2021. 2. 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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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의 '자화상'
혼자 사는 25~49세 2000명 조사결과
51%가 "자기주도적인 삶 산다" 생각
경제적 부담 등에 23%는 '비혼' 선택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외로워 보인다"
통계로 살펴본 '일상'
여가시간 대부분 동영상 시청에 할애
하루에 2.2끼 먹고 3번 중 1번은 '혼밥'
경제 문제·건강 등 가장 큰 고민거리
'1인가구가 편리' 인식에 더 늘어날 듯
서울 한 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혼밥을 즐기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주도적인 삶을 추구하지만 때때로 외롭다. 하지만 외롭지 않으냐는 말은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이다. 미래의 가장 큰 걱정은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와 건강이다. 생활 문제에 대한 해답은 포털 검색으로 해결하고, 주로 TV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면서 여유 시간을 즐긴다. 식료품과 생활용품의 온라인 구매에 익숙하고, 하루에 보통 두 끼를 먹고 혼밥도 마다하지 않는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1인가구연구센터가 주요 도시에 사는 25∼49세 200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2020년 ‘1인가구’의 자화상이다.

◆외롭지만 외롭다는 말은 싫어

이들의 심리 상태는 복잡하다. 스스로 1인가구를 선택하는 비율이 늘고, 자신을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인간형으로 규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움을 느끼고, 이 때문에 고민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31일 1인가구연구센터에 따르면, 1인가구는 51.4%가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비혼족의 선택을 인정한다는 응답도 57.2%로 ‘아니다’(10.7%)는 답변을 압도했다.

취업 후 쭉 혼자 살았다는 30대 직장인 이태훈(가명)씨는 “이제 혼자 사는 데 익숙하다”며 “이성이나 결혼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진짜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조사에 따르면 이씨처럼 1인가구의 결혼에 대한 통계적 관심은 줄고 있다.
2019년에는 결혼 의향이 없는 1인가구 비중이 17.7%였지만 2020년에는 23.4%로 늘어났다. 남성들은 그 이유로 ‘경제적 부담’을 가장 많이 꼽았고, 여성들은 ‘결혼이 싫다’는 답변이 많았다.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다면서도 이들은 때때로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 외로움·우울감 해소를 위해 커뮤니티나 상담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비율이 32.8%였고, 고독사 기사에 관심이 있다는 비율도 34.7%였다.

‘외로움’ ‘초라함’은 이들이 지우고 싶은 이미지이자 다른 사람들로부터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혼자 사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듣기 싫은 소리로 48.8%가 ‘외로워 보이는’, 41.7%는 ‘초라한 안쓰러운’, 21.8%는 ‘우울한’을 꼽았다.
혼자 사는 이들은 이 같은 질문에 “괜찮다”고 하거나 “같이 살 것도 아니고 왜 남의 일에 관심이냐”, “남 걱정 하지 말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연구소는 “외로움은 1인가구가 겪는 가장 큰 심리적 어려움이지만 동시에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1인 생활의 고충은 스스로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과 연계돼 있다. 경제문제는 남녀 공통의 걱정이었고, 외로움과 건강 문제도 중요했다. 남성의 경우 20대는 경제, 30대는 외로움, 40대와 50대는 건강을 현재의 가장 큰 고민으로 꼽았다. 여성은 전 연령대가 공히 경제문제를 첫손가락에 꼽았다.
◆TV·모바일은 ‘단짝’… 식사는 대충

혼자 사는 40대 후반 김철기(가명)씨는 지난해 멀쩡한 TV를 두고 75인치 신형 TV를 하나 더 샀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갈 일이 더 없다”는 김씨는 “뭔가 소리가 나면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으니까, 집에 가면 잘 때까지 TV를 켜 놓는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의 이현수(가명)씨는 TV 대신 PC나 모바일 기기로 녹화된 방송 프로그램을 주로 시청하고, 때때로 라디오를 듣기도 한다.
TV와 스마트폰은 1인 생활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삶의 도구다.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여가활동은 TV·모바일을 통한 영상 시청(70.5%)이었다. 그밖에 집에서는 온라인 쇼핑과 독서를 주로 하고, 집 밖으로 나가면 영화관을 가거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극장 방문과 친구 등과의 만남 등 집 밖 활동이 크게 줄었다. TV나 모바일 기기가 더없이 중요해진 셈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로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혼자 여가를 보내는 경우가 많은 1인가구들은 일주일에 평균 1.76일을 어딘가 들렀다 귀가했고, 집과 먼 곳은 싫어하는 경향을 보였다. 주로 술을 마시거나(38%), 대형마트(32.8%), 운동시설(26.2%), 카페(24.2%)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이런 곳의 방문 횟수는 크게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1인가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이자 소비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것은 다름 아닌 ‘식사’다. 이들은 일주일에 평균 15.5끼(하루 평균 2.2끼)를 먹었고, 3분의 1은 혼자 먹는 ‘혼밥’을 했다.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소홀히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5끼 이상은 대충 때운다는 응답이 절반 가까이(48.6%)나 됐다.
또 이들은 생활의 어려움이 발생할 경우 최대한 혼자 해결(47%)하려 노력하고, 차선책으로 포털 검색(46%)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온라인 중고거래 활성화에는 ‘나홀로족’이 기여하는 바가 크다. 이들 중 절반은 온라인 중고거래를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렌털(임차)·구독 서비스에도 관심이 많다. 생활용품도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사는 경우(56%)가 더 많고, 식료품 주요 구매처도 온라인이 45%나 됐다.

혼자 살면서 겪는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앞으로도 이런 1인가구 증가세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인 생활자들은 사회·경제적으로 1인가구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현재 한국사회는 다인가구보다 1인가구로 사는 게 편리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연구센터의 분석 결과다.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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