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위성락 "북미 먼저 복원시킨 뒤 남북 나서야 운신 커진다"

이국현 2021. 2. 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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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선택은 OX 문제 아냐..우리의 좌표를 세워야"
"美, 강화된 동맹 역할 주문할 것..중심 잃지 않아야"
"북미 모두 유연성 필요..톱다운, 바텀업은 보완적"
"정책 검토 끝나기 전 당장이라도 막후 대화 나서야"
"美 움직여서 남북을 열어야..거꾸로 하면 틀어져"
"우리가 치고 나가면 좋겠지만 가능한 얘기 아냐"
"한일 현안, 초당적 민간 현인모임 통해 해결" 제안
"외교 개혁도 국정 주요 과제라는 인식 공유해야"
[서울=뉴시스] 박민석 기자 = 위성락 전 주러시아대한민국대사관 대사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1.29. mspark@newsis.com


[서울=뉴시스] 이국현 김지현 기자 = 위성락 전 러시아대사는 바이든 정부 출범 후 미중 갈등이 지속되며 한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에 대해 "OX 문제가 아니다"며 "미국을 선택하느냐 중국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우리의 좌표와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동맹을 중요시하는 바이든 정부가 한국에 한미 동맹 현안은 물론 반중(反中) 전선, 북핵 문제 등에서 강화된 역할을 요구할 수 있는 만큼 정권 초기에 긴밀한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선 북한의 호응이 없는 남북 대화와 협력을 우선시하기보다는 북미 실무 대화에서 국면 타개의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위 전 대사는 지난달 29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따른 국제 정치 및 한반도 정세 변화와 한국 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위 전 대사는 외교부 출신 대표적인 북미·북핵통이자 손꼽히는 외교 전략가이다. 북미국장으로 북핵 업무를 담당하며 2차 북핵 위기에 대응했고,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있던 시기에는 북핵 6자 회담 수석대표로 두 차례의 남북 비핵화 회담을 이끌어 2012년 북미 2.29 합의에 기여했다.

이후 주러시아 대사로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하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지난해에는 2016년 이후 북핵과 4강 외교를 분석하고 한국 외교의 개혁 방안을 담은 '한국 외교 업그레이드 제언' 책을 출판했다.

◇"바이든의 동맹 역할 요구는 부담…남북 독자행보 재고해야 될 수도"

위 전 대사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을 중시하지 않았고, 상대에게 충실할 것을 강요하지 않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강화된 입장을 취할 것"이라며 "먼저 동맹에 충실한 대신 상대에게도 도리를 해달라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양자 동맹 이슈와 북한, 중국 문제 세 가지 영역에서 한국에 대해 충실한 동맹의 역할을 주문할 가능성이 있다"며 "남북 관계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려고 했던 기류를 재고해야 될 수 있다. 동맹을 미국이 진지하게 다루는 것은 좋은 측면이지만 우리한테 부담 또한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은 급부상하면서 주변 국가에 정책과 파워를 투사하려는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가까운 주변국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어 적절한 관여와 위험 분산이 필요하다"며 "미국이 동맹이라는 점을 활용하고, 일본과 호주, 유럽, 러시아도 활용하면서 중국과 나쁜 관계로 가져가지 않으려는 배려를 해야 한다"고 짚었다.

바이든 정부 출범 후 여전히 신냉전이 세계를 위협하고, 분열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보다는 좌표와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는 점도 강조했다.

위 전 대사는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중간지대에 있다가 사안별로 미국이 잡아당기면 미국 쪽으로 갔다가, 중국이 잡아당기면 중국으로 가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보를 보였다"며 "끊임없이 양국의 견인력에 의해 흔들리기보다는 우리가 일정한 방향과 좌표를 정해서 행동을 축적해야 한다. 우리가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 9시, 미국이 3시 방향으로 잡아당기려고 한다면 한국은 1시 또는 1시30분 방향의 좌표를 정해야 한다"며 "진보 정권이면 1시, 보수정권이면 1시30분 정도의 좌표를 갖는 것이 좋다"고 했다. 기본적인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각인시켜서 미중 모두의 기대치를 조정해야 덜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은 2시, 호주는 2시30분, 인도는 12시30분 방향으로 일관성을 축적한 것을 감안해 규형 있고 유지 가능한 최적의 좌표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요구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되 들어가서 계속 1시 정도의 입지를 취하고, 전체 모임이 불필요하게 반중연대가 되지 않도록 역할을 하면 된다"며 "얼마 전에 만난 호주 고위급 인사는 쿼드(Quad)에 대해 미국, 일본, 호주, 인도가 있지만 중국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는 전부 다르다고 했다. 자꾸 OX로 규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박민석 기자 = 위성락 전 주러시아대한민국대사관 대사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1.29. mspark@newsis.com


◇"바이든, 비핵화 앞에 두고 싶어하지만 北은 신뢰 구축 먼저"

위 전 대사는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비핵화를 목표로 단계적인 접근을 취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미 백악관은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다른 확산 관련 활동이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라며 북핵 억제를 위한 '새로운 전략'을 채택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동시에 대북 압박과 외교 가능성에 대해 한국, 일본 등 동맹국들과 협의해 정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위 전 대사는 "북한 핵 문제는 당장 터진 일이 아니므로 다른 이슈에 비해 언급이 덜할 수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비중 있고,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며 "북핵 접근 방법 역시 ABT(Anything But Trump) 심리가 작동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했던 2018, 2019년의 정상 외교에 대해서도 호의적으로 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그는 "협상 내용상 큰 틀은 트럼프 행정부와 비슷하게 갈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설정하고,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세 번이나 했지만 핵과 미사일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급적 중요한 비핵화를 앞에 두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단계적 접근에 대한 북한과의 시각차다. 그는 "북한은 북미 간에 신뢰를 구축해야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싱가포르 합의를 대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역으로 신뢰가 없으면 비핵화를 촉진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미국은 비핵화를 앞당기는 것이 과제이지만 북미 관계 개선을 먼저 요구하고 있는 북한이 이를 들을 가능성은 적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을 향해서도 국제적인 핵 비확산 체제를 무너뜨린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보다 책임 있게 행동하고 북핵에 있어서 협조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지정학적 가치 측면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접근에 호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위 전 대사는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해선 북미 모두가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싱가포르 선언에 대한 집착을 낮춰야 하고, 바이든 행정부 또한 트럼프가 해오던 모든 것을 부인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어 "톱다운(Top down)과 바텀업(Bottom up)은 보완적인 것"이라며 "위험을 감수하고 결단을 내려서 문제를 풀어가려는 정상 차원의 강력한 의지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대화 자체에 인색한 상황이지만 바이든도 마찬가지로 대화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며 "정책 검토가 끝난 후에 대화하기보다는 지금 만나 상대방 의중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막후 대화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박민석 기자 = 위성락 전 주러시아대한민국대사관 대사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1.29. mspark@newsis.com


◇"북미 대화 권유해 관계 복원 후 선순환 에너지로 남북 대화해야"

위 전 대사는 북한의 도발 카드가 살아있으며 한반도 상황 관리를 위해선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은 제8차 당대회에서 핵무기 경량화, 소형화, 극초음속 무기, 다탄두 등을 모두 꺼내놓고 고압적 응수 타진을 했다"며 "북한이 도발하면 수개월 정도 대화가 단절되고,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 우리 정부에게는 시간이 없는데 도발이 있으면 아주 어렵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한미가 비용과 효과를 잘 판단해야 한다"며 "한미연합훈련의 시뮬레이션을 약간 바꾸는 정도를 북한이 인정할지조차 의문인 만큼 우리하기에 달렸다"고 말했다. 예컨대 훈련을 하면 북한이 도발할 수 있다는 식의 단순한 설득 논리가 아니라 훈련을 어떻게 조율하는 것이 비핵 평화 협상에 이익인가 하는 점을 바이든 측에 세심하게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위 전 대사는 "지금은 북한과 대화가 안 되기 때문에 바이든 정부와 좋은 관계를 세우는 게 급선무"라며 "우선 바이든 정부 동아시아 정책의 구상을 정확히 알고, 호의와 신뢰를 얻을 만한 구상을 내놓아야 한다. 동아시아 정책에 관해서 큰 틀에서는 협력해주고 한반도 정책에서 우리 의견을 설득하자는 접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북한에 동아시아 방역공동체 제안을 했지만 '비본질적 문제'라고 일축한 상황에서 더 이상 남북 관계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북미 대화를 권유해 관계를 복원시키고, 선순환 에너지가 나오면 남북 관계를 복원시켜야 한다"며 "거꾸로 하면 바이든 정부와 얘기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동맹인데 독자 행동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만큼 북미가 복원된 후 일정한 단계가 되면 우리의 운신 공간이 커지고, 그 때 우리가 가진 남북 관계 아이디어를 시도할 수 있다. 지금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남은 시간이 얼마 없고, 바이든 행정부가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견인돼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또 북한이 그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며 "결국 미국을 움직여서 북한을 움직이게 하고 남북을 열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치고 나가면 좋겠지만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위 전 대사는 강제징용과 위안부 배상 판결 등 역사 문제로 꼬여 있는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선 초당적 민간 현인 모임을 구성해 해법을 정부에 건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인 모임이 해법을 도출해 건의하면 정부가 존중하는 대응 방안을 채택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제법적인 문제와 판결 사이의 괴리로 삼권 분립과 피해자 중심주의를 내세우는 정부가 입장을 바꾸기는 어렵다"며 "바이든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주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국 정부가 주체적으로 문제를 풀려는 의지를 보이고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박민석 기자 = 위성락 전 주러시아대한민국대사관 대사가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1.29. mspark@newsis.com


◇한국 외교 업그레이드 제언 "韓외교 동네 축구…전략 필요"

위 전 대사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개혁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한국 외교가 정책이나 전략과 거리가 있는 행정적이고, 행사 위주, 인기 위주 대처에 머물러 있다는 문제 의식을 토대로 '한국 외교 업그레이드 제언'을 집필했다. 책에서는 한국 외교의 5대 수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적인 관점, 국내 정치 위주, 이념적 당파적 포풀리즘, 아마추어리즘을 지적하고 집권 엘리트, 관료, 정치권, 언론,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 6대 플레이어의 행태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는 촛불 민심을 토대로 출범했다. 이는 국정 전반에 대한 개혁 주문이라고 봤는데 4년간 외교 안보분야에서 선진적, 개혁적 변화가 안 보였다"며 "친미·동맹·국제공조 대 친중·친북·민족공조로 우리 외교가 너무 분열돼 있는 상황에서 진보형 융합 모델을 내길 바랐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핵이 5년, 10년 만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수십년 이상이 걸리는데 우리는 5년마다 진보, 보수가 바뀌고 북핵 정책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바뀐다. 사회 전체가 이념화, 양극화돼 진폭이 크다"며 "한국이 세계 10위권 무역 국가로 국제사회에 위치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한국 외교가 안고 있는 생태계 현상은 시대착오적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외교는 동네 축구를 하고 있는데 미국, 러시아, 일본은 월드컵을 하고 있다"며 "검찰 개혁, 국정원 개혁은 과제로 생각하지만 외교 개혁이 국정의 주요 과제라는 기류는 아직까지 없었다. 우리 외교의 생태계, 플레이어의 내재적 취약점을 고치는 출발점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부터"라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lgh@newsis.com, fin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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