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팬데믹 공조 중요.. 인간·지구 공존 '그린 어젠다' 부상" [연중기획 - 포스트 코로나 시대]
韓, 민주적 시스템으로 코로나 대응 입증
中은 美와 '협력적 경쟁관계' 설정할 듯
전세계 대량실업 우려.. 보호주의 득세
수입관세 강화 등 무역 충돌 가능성 고조
미국의 세계적인 국제관계 분야 석학인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Jr.)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진단을 위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나이 교수는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2011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글로벌 사상가’ 1위로 선정됐었다. 그는 국제정치에서 군사력, 경제력 같은 물리적·경합적 힘을 지칭하는 ‘하드 파워’에 대응하는 권력 개념으로 문화적·정신적 가치, 대외정책의 무형 자원을 뜻하는 ‘소프트 파워’ 이론을 정립했다. 나이 교수는 또 국가권력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인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이론을 정립한 국제 정치학계의 현존하는 최고 석학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에 나타날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코로나19 이후의 지정학적인 변화 측면에서만 봐도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2030년 정도의 세계를 생각해 보면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구축돼 있을 것이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했고, 미국 등 서구 국가들과 경제 회복 측면에서 커다란 격차를 두고 앞서가고 있다. 중국 경제는 성장하고, 미국 경제는 쇠퇴하고 있어 2025년을 전후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향상됨에 따라 중국이 다른 나라에 존경과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대상국은 인접국뿐 아니라 유럽과 남미 국가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어느 나라든 중국에 반기를 들면 중국의 경제 지원과 투자를 받을 수 없고, 세계 1위의 수출 시장을 놓치게 된다. 코로나19 이후에 중국과는 정반대로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국가들의 경제는 갈수록 쇠퇴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 정부와 중국 기업이 국제기구를 재편할 것이고, 중국의 입맛대로 국제적 기준을 설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쇠퇴하는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선택은.
“나는 미국과 중국이 반드시 대결의 길로 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미·중 양국의 상호 의존성으로 인해 두 나라는 ‘협력적 경쟁’(cooperative rivalry) 관계가 될 것으로 본다. 미국과 중국은 모두 전환기적 도전에 직면해 있고, 서로 상대국의 도움 없이는 이 도전을 헤쳐갈 수 없다. 기후변화 대응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한국은 미·중 관계의 변화에 맞춰 무엇보다 다른 나라와 긴밀한 협력 체제 속에서 대외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출범한 조 바이든 새 행정부의 한·미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비교할 때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등 미국의 우방국과 동맹 관계를 보다 중시할 것이다.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람에 치중하는’(personalistic) 접근 방식을 취했으나 바이든 대통령 정부에서는 그런 경향이 줄어들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것이나 그에 앞서 한국과 보다 긴밀하게 사전 협의를 할 것이다.”
-코로나19가 북한의 미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북한이 코로나19 여파로 과거보다 더 심각한 경제난을 겪을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월5일 당 대회에서 국가 경제 발전 5개년 계획 기간이 2020년 말에 끝났지만, 당초 내세웠던 목표를 거의 모든 부문에서 달성하지 못했다고 자인한 연설만 봐도 북한이 처한 경제난의 현실을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북한에 이중의 경제 제재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와중에 코로나19에 따른 고립 심화로 경제 정책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제 과거사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한·일 양국이 공통으로 직면한 미래의 도전에 대응하려면 과거사를 뒤로한 채 새로운 협력 체제를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한·일 양국이 공동의 안보 위협과 코로나19 확산 사태 극복 및 기후변화 문제 등에 함께 대응해 나가야 한다.”
-코로나19가 몰고 올 세계 각국 공통의 대내외 환경 변화는.
“대규모 실업, 빈부격차와 불평등 심화, 사회 공동체 붕괴 등의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1930년대와 유사한 독재 정권이 출현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정치권에서 권력 쟁취를 위해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기고, 포퓰리즘을 내세우는 정치 지도자들이 출현할 수 있다. 또한 ‘토착주의’(nativism·외국인, 외국의 관습, 사상 등을 없앰으로써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개선하고자 하는 운동)와 보호주의가 득세할 것이다. 국가 간 무역도 관세와 수입 쿼터제가 강화될 것이고, 각국에서 이민자와 난민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로부터 경제가 회복하는 속도가 느려질수록 세계 각국에서 권위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이들 정권이 해당 지역에서 자국 이익 확대를 노리며 서로 충돌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 당분간 세계 최고 강대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나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한 세계 질서는 코로나19 글로벌 확산 이전부터 중국의 부상과 서구 국가에서의 포퓰리즘 정권 등장으로 인해 거센 도전을 받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시스템 매니저’로서 미국 역할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21세기는 초국가적인 상호 의존의 시대이고, 고립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바이든 정부가 얼마나 빨리 다른 나라와 다층적인 협력 관계를 복원하느냐에 따라 대외정책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코로나19가 몰고 올 긍정적인 변화는.
“세계 각국은 코로나19와 같은 글로벌 팬데믹에 독자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고, 인간과 지구가 함께 공존하는 ‘그린 인터내셔널 어젠다’(green international agenda)가 부상할 것이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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