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로 불거진 택배비 인상 논의.. 요금 올라도 기사 몫은 거의 제자리

최지희 기자 2021. 2. 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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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만 택배 종사자 16명이 과로로 숨진 이후 택배 기사 처우 개선 요구가 커지자 택배요금 인상 논의가 나오고 있다. 최근 택배노조는 과로사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택배 분류작업의 책임 소재를 놓고 택배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택배사 측은 택배를 분류하는 인력을 투입하고 자동화 설비에 투자해 기사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려면 운임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택배 가격을 올려도 현재의 택배 거래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택배 계약에서 갑(甲)의 위치에 있는 온라인 쇼핑몰 등 화주(貨主)나 원청인 택배사가 택배기사보다 더 많은 이익을 보게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1일 서울시내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근로자들이 물건을 옮겨 싣고 있다. /연합뉴스

◇ 경쟁 심화에 택배 단가 계속 하락… 노조 "근무환경 개선해야"

1일 업계에 따르면 택배 단가는 업체 간 물량 경쟁으로 지난 15년간 2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택배 단가는 2006년 2807원에서 지난해 2000원대 초반까지 내려왔다.

이런 가운데 전국 택배기사의 약 10%에 해당하는 조합원 5500여명이 택배사와 갈등을 빚다 최근 보름 사이 두 차례나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선언하는 등 노사 갈등이 이어지자 택배비 단가 인상 필요성이 다시 제기됐다. 지난달 21일 노사정 합의에 따르면 택배기사 과로사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택배 분류작업이 택배기사의 기본 업무 범위에서 제외되고 택배사 책임으로 명시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택배사가 분류작업 전담 인력을 투입하고 자동화 설비 설치 계획을 세워야 한다.

택배업계는 "당장 합의 내용을 적용하려면 한 해 영업이익을 끌어모아 투자를 해도 모자란 상황"이라며 가격 인상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택배업체 관계자는 "분류인력을 투입하는 데만 연간 500억~750억원이 소요되고 자동화 설비를 마련하는 데는 약 1700억원의 투자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분류작업 자동화 설비가 도입되지 않은 한진(002320)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약 1100억원,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약 350억원이다.

◇ 5곳 이상이 나눠먹는 택배비… 택배기사 몫은 평균 건당 800원

택배 대리점들과 기사들도 가격 인상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한 택배대리점연합회 관계자는 "너무 낮게 형성된 가격 구조에서 5개 이상의 주체들이 분배를 하다 보니 이익 구조를 재편성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택배 운임은 택배사와 대리점, 택배기사, 간선 트레일러, 허브터미널의 화물운송중개업체(도급사) 등이 정률제와 정액제가 혼합된 계약에 따라 나눠 갖는다. 우선 택배사는 전국의 대리점들과 지역별·인구밀집도에 따라 수수료가 다른 위탁계약을 맺는데, 대략 평균치로 보면 택배사가 화주에게 택배비 1800~2300원을 받는 경우 대리점에 평균 수수료로 약 900원을 지급한다.

다만 나머지 운임을 택배사가 모두 갖는 것은 아니다. 택배사들은 대리점에 지급한 수수료를 제외한 택배비를 간선 트레일러, 허브터미널에서 상·하차 인력을 투입해 운송을 중개하는 도급사와 나눠야 한다.

대리점들도 원청에서 받은 900원을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들과 집화·배송에 대한 수수료 계약을 맺고 나눈다. 대리점마다 차량·기름값·운송장 제공 여부 등 기사와의 계약조건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평균적으로 대리점이 약 10~11%를 가져가고 나머지는 택배기사의 몫이 된다.

택배사로부터 운임을 분배받는 도급사 역시 낮은 택배 가격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화물운송중개업체 관계자는 "도급사는 상·하차 아르바이트생들을 구해 업무에 투입하는데 최저임금은 매년 오르는 반면 택배 가격은 점점 떨어지고 있어 이 상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집화수수료는 집화 담당 기사가, 배송수수료는 배송 담당 기사가 갖는다. /그래픽=박길우

◇ 쇼핑몰 ‘백마진’ 등이 택배비 왜곡… "택배비 올라도 기사 몫은 적어"

업계에서는 운임 인상 논의와 동시에 쇼핑몰 등 화주들과의 거래 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택배조합원은 "온라인 쇼핑몰 중에선 택배비를 2500원이라고 적어놓고 택배사와는 1700~2000원에 계약하는 곳이 많다"며 "이런 불공정한 ‘백마진’ 거래 구조만 바로잡더라도 최대 800원가량의 택배가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쇼핑몰이 포장비와 보관비 등의 명목으로 택배비 일부를 떼가는 이른바 ‘백마진’은 업계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다. 소비자는 택배회사에 택배비로 2500원을 낸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쇼핑몰이 중간에서 500~800원을 취하고 1700~2000원을 택배사와 대리점, 기사, 트레일러, 도급사 등이 나눠 갖게 되는 것이다.

현 구조에서는 택배비를 높여도 택배기사보다 택배사가 더 큰 이익을 보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택배대리점연합회 관계자는 "택배사마다 택배 부피에 따라 가격을 정해놓은 ‘단가 테이블’이 다 다른데 이를 토대로 택배비 인상에 따른 운임 수수료 분배 구조를 데이터로 살펴보면, 운임이 오를수록 대부분 원청(택배사)의 수익이 택배기사보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들이 분석한 데이터에 따르면 택배 운임이 3500원으로 오르면 택배사가 1580원을 가져가 트레일러·도급사와 나누고, 집화 담당 택배기사가 980원, 배송 담당 택배기사가 940원을 받게 된다. 이때 택배기사의 몫에서 약 10% 정도는 대리점이 가져간다. 이 관계자는 "결국 택배비를 인상하더라도 근본적인 분배 구조부터 손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택배업계의 구조적 문제에 따른 노사 갈등이 심화하자 정부도 올 1분기 안에 택배 거래 구조 개선을 위한 연구에 착수하고 운임 현실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는 택배 노사와 쇼핑몰 등 거래처를 대상으로 올해 상반기 중에 쇼핑몰과 택배업과의 상생안을 마련하기 위한 의견 수렴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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