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남 주아세안대표부 대사 "아세안 중시 외교는 정권과 상관없이 계속돼야" ['창간 32' - 亞太 주요국 대사에 듣는다 ]
동아시아 다자외교 교두보 역할
한국과 비슷한 역사·성장에 영감
보건협력 증진 등 교류 강점 많아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중요
강한 연대 만들려면 상대 존중해야
임성남 주아세안대표부 대사는 지난 14일 세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의 협력이 한국 외교에 의미하는 점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30여 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인 그는 2019년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위치한 주아세안대표부 대사로 부임했다. 외교부 차관을 지낸 그의 주아세안 대사 부임 자체가 한국의 아세안 중시 외교 노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임 대사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아세안+3에서 독립되면서 만들어진 회의체라는 점을 예로 들며 아세안은 한국의 동아시아 외교에서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미·중이 아세안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서도 아세안이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적 관점(AOIP)을 채택해 균형적 태도를 유지하는 점을 거론하며 “한국이 아세안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 대사는 여러 강대국이 아세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이 특히 아세안에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아세안과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며, 성장의 영감을 주는 나라라는 점에서다.
―2012년 9월 아세안 대표부가 자카르타에 설치된 지 올해로 10년차다. 대아세안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위상 변화가 궁금하다.
“지난 10년간 아세안에서 한국의 위상은 괄목상대할 정도로 높아졌다. 한국은 아세안의 5위 교역상대국이고, 8위 투자국이다. 지난 3년 한·아세안 상호 교역량은 29% 증가해 2019년 말 기준 1533억달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1월 신남방정책을 통해 한국과 아세안 간 관계를 4강 수준으로 격상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아세안 10개국 조기방문, 제도적 기반 마련, 한·아세안 협력기금 증액 등은 그 성과다.”
―아세안에는 다양한 나라가 있다. 이들과 한국이 추구하는 관계는 각각 다를 것 같다.
“아세안 회원국 10개국 간 개발 격차가 상당히 있다. 각 나라에 맞춘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아세안은 크게 메콩강 유역 국가들(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미얀마)과 그 외 해양 국가(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로 나뉜다. 그간 메콩 국가들과 소지역 협력을 모색해 왔다면 올해부턴 해양 국가들과 소지역 협력도 본격적으로 해나갈 것이다.”
―한국의 지역협력은 아세안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됐다는 얘기가 있다.
“동아시아를 동북아와 동남아로 양분해 본다면, 동북아에서 작동하는 다자외교 틀은 장기 동면 상태에 있는 6자회담 외에는 거의 없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체제가 유일하다. 그런데 2008년 한·중·일 정상회의가 만들어진 계기가 아세안+3 회의로부터의 분리였다. 아세안을 교두보로 한·중·일 회의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세안이 한국의 동아시아 외교에서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다. 한국은 동남아를 우회하면서, 동아시아를 포괄하는 안보협력을 펴나가야 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아세안 협력이 가진 잠재성은.
“한국은 한국의 방식으로 해나갈 것이다. 아세안 지역에서 일본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약 70∼80%다. 그런 상황에서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는데, 공장만 짓는 게 아니라 자카르타에 정비기술학교를 설립하고, 공동 R&D(연구개발), 현지 전문업체 육성, 유학생 초청 사업 등을 병행한다. 한국의 투자 방식은 ‘상생’이다.”
―미·중 경쟁 속에서 남중국해 갈등 등 아세안도 위기를 겪고 있다.
“미·중이 아세안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세안 국가들은 역내 긴장 고조 속에서도 결코 어느 한 편에 동조하지 않는다. 컨센서스를 기본으로 하는 의사결정 방식 속에서 아세안은 미·중 경쟁 구도에 항상 차분하고, 신중한 입장을 유지한다.”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같다.
“한국은 아세안의 태도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아세안과의 협력이 미·중 갈등 속 한국에 의미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세안 국가들이 미·중 사이에서 취한 입장이 모두 같다고 볼 순 없지만, 아세안 내에도 한국처럼 미·중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가 여럿 있다. 한국은 이 같은 ‘유사 입장국’들과 연대해야 한다. 개인적 생각이다.”
―하나의 아세안이 지속 가능할까.
“1967년 아세안 창립 당시 신나탐비 라자라트남 싱가포르 외무장관은 벤저민 프랭클린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언급했다. 지금까지 아세안 내에서 자주 언급되는 말이다. 국가들이 아세안을 통해 얻는 이익이 아세안을 떠나면서 얻는 이익, 아세안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상회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하나의 아세안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의 대아세안 협력만이 갖는 특징이 있다면.
“한국은 아세안 국가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 역사적으로 식민지배 경험을 공유하고, 전후 혹은 식민지배 후 경제발전을 최우선시한 국가전략 역시 유사하다. 또 한국은 아세안 국가들에 성장의 영감을 주는 나라다. 한국의 대아세안 협력이 가진 강점이다.”
―아세안은 한국과의 협력에서 뭘 원한다고 생각하나.
“코로나19 상황에서 아세안은 무엇보다 우리와 보건협력 증진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또 아세안은 천연자원이 없는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교육을 통한 인재 육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점에 부응해 한·아세안 협력기금을 활용해 기술직업교육훈련 사업과 박사과정 장학지원 사업 등을 최근 새롭게 출범시켰다.”
―아세안대표부가 특히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있으면 소개해달라.
“일본은 1966년 설립된 아시아개발은행(ADB)을, 중국은 2016년 설립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아세안과의 협력에 활용해왔다. 지난해 말 아세안대표부에 금융협력센터를 설치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직원 2명의 작은 기관으로 시작하지만, 앞으로 우리 대아세안 금융외교의 허브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현장에서 아세안 외교에 대해 느끼신 점이 있다면.
“결국 사람과 사람의 교류다. 아세안 국가들과 강한 연대를 만들려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세안 분들에 대한 겸손한 자세가 중요하다. 한국이 유엔에 가입하고 나서 1996년 처음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이 됐다. 당시 유엔 안보리에서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못하는 나라가 둘 있었는데 한국과 폴란드였다. 폴란드는 현재 EU 회원국이다. 아마 지금도 한국은 다시 안보리 이사국이 되면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대한민국에게 아세안과의 협력은 하나의 발판이 될 수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신남방정책을 육성했지만, 정부가 바뀐다고 해서 멈추면 안 되는 일이다. 지역협력 외교는 양자외교와 달리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세안 중시 외교는 정부와 상관없이 한국 외교에서 꾸준히 진행되는 방향이라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그래야 아세안에서 신인도도 올라간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1958년 서울 출생 △외무고시 14회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 석사 △주미대사관 참사관, 주중대사관 공사, 주영국대사 등 역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역임 △외교부 제1차관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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