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역사 된 '게임스톱' 대전, 대중선동인가 민주봉기인가

정의길 2021. 2. 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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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스톱 대전이 남긴 것]
개인투자자의 시장 주도 가능성..개미 이점을 극대화
폭등장세 끝물의 전형적 현상..시장에도 포퓰리즘 선동
1월28일(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스프링필드에 있는 한 게임스톱 매장의 모습. 스프링필드/EPA 연합뉴스

민주주의 봉기인가, 포퓰리즘 반란인가?

미국의 컴퓨터·비디오게임 판매업체인 게임스톱의 주식을 놓고 개인 투자자와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자 사이에 벌어진 전례없는 매매 공방의 포연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게임스톱 주식은 지난주 헤지펀드들의 공매도 포지션에 맞선 개인 투자자들의 매집 대응, 주가 급등락, 개인투자자들이 이용하던 로빈후드 등 주식거래 플랫폼들의 거래 제한 조처, 이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반발과 정계의 비판, 거래 제한 해제 및 주가 재폭등 등으로 ‘주식대전’의 중심에 섰다. 이를 거치면서 게임스톱 주가는 일주일동안 61달러에서 325달러로 무려 500%가 폭등하며 마감했다. 지금까지는 게임스톱 주식 매집 운동을 통해 새해들어 무려 1625%를 상승시킨 개인 투자자들의 승리지만, 개인 투자자들이 비이성적으로 가세하는 폭등장세 끝물의 전형적 양상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시장 민주주의를 위한 봉기?

게임스톱 주식 매매 공방은 개인투자자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증시의 비대칭성과 불평등성에 항의하는 신기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월가의 시각을 대표하는 보수적인 <월스트리트저널>조차도 “이번 운동은 뱅가드그룹의 창업자 잭 보글에 의해 점화된 시장민주주의 50년만의 최고봉”이라고 평가했다. 잭 보글은 인덱스펀드를 창안해, 개인투자자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증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번 게임스톱 매매 공방은 개인 투자자들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개인 투자자들은 단기 실적에 구애받지 않고, 장단기 투자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반면, 기관투자자들에 비해 정보력, 시장조성력 등이 약하다. 이번 사태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주식포럼인 ‘월스트리트벳츠’ 등에서 실시간으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거대한 군집을 이뤄 매매를 진행했다. 일종의 집단지성을 형성해, 거대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이번 사태는 앞으로 증시가 기관투자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고, 개인투자자들의 집단적 대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사태가 “소파에서 맥주와 나초를 먹으면서 텔레비전으로 엔비에이 프로농구팀 엘에이레이커스의 경기를 관람하던 이들이 갑자기 코트로 뛰어들어와서 르브론 제임스의 슛을 막은 것과 같다”고 평가했다. 악명높은 투자자 스티브 코언이 운영하는 헤지펀드 포인트 72을 비롯해, 멜빈 캐피탈, 메이플레인 캐피탈, 디아이 캐피탈 등이 게임스톱 공매도를 했다가 큰 손해를 봤다.

정치권도 이번 사태에 가세해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 사이의 불평등을 비판하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엘리자베스 워런,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테드 크루즈 등 민주·공화 양당의 진보·보수적 노장 정치인 모두가 증시의 기울어진 운동장 교정을 촉구했다.

코로나19로 여가 활동과 경제 활동의 마비,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원에 따른 현금 소지, 정치권에서 발화된 온라인 참여 민주주의 등이 결부되어, 시장에도 대중의 힘이 직접적으로 관철되는 시장 민주주의의 전기가 이뤄졌다는 평가다.

포퓰리즘 반란?

하지만 정치권에 이어 시장에도 극성을 부리는 포퓰리즘에 선동된 비이성적 몰려다니기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게임스톱이라는 회사 자체가 이미 시장에서 퇴출되기 직전의 좀비 회사에 불과한 점이 우선 거론된다. 1996년 창업된 게임스톱은 현재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5천개의 대리점을 갖춘 게임판매업체다. 온라인 매매가 대세가 되는데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지난해 9월까지 매출이 30%나 격감했다. 이번에 개인투자자들의 또다른 매집 대상이던 ‘에이엠시(AMC) 엔터테인먼트’ 역시 지난해 말 현금 유동성 부족을 스스로 밝히는 등 심각한 상황이다.

매집 대상이 된 주식들은 ‘90년대 향수 주식’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한물 가서 주가가 싼 데다, 소량의 거래로도 큰 폭의 주가 변동을 갖는 주식들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돈풀기에 따른 유동성 폭등장세의 끝물에 나타나는 전형적 현상이라고 짚는다. 오르는 주가에 막차를 타는 개인투자자들이 집단적으로 가세해 나타나는 극심한 주가변동 현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번엔 온라인 문화의 발달로 특정 주식에 개인투자자들이 더 극심하게 몰렸다는 지적이다.

게임스톱 주가 공방이 벌어진 지난주 전 세계적인 증시가 뚜렷한 하락 반전세로 돌아선 것도 이런 우려를 키운다. 지난 29일 미국 다우지수는 2.03%가 급락하며 3만선이 붕괴된 29982.62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 처음으로 3만선이 무너졌다. 에스앤피(S&P), 나스닥 지수 모두 2% 가량 하락했다. 지난 주 다우 지수는 3.3%, 에스앤피 역시 3.3%, 나스닥은 3.5%가 하락했다.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국가 및 신흥국 증시 역시 최고점에서 일제히 반전 하락세로 밀려났다. 이에 따라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의 신흥시장(EM)지수는 이번주 초 최고점을 기록한 뒤 3.8%나 하락했다.

‘트럼프주의’의 영향도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및 그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월가가 개입된 딥스테이트(그림자 정부) 음모론’ 등이 주식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게임스톱의 주가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는 전문가 대부분이 동의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게임스톱 매매 공방은 주가 하락과 상관없이 증시에 큰 그림자를 남겼다는 데도 동의하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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