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도 얼어붙을 물류센터에서..손에 쥔 건 '핫팩 한장'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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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은 있지만 양옆은 뻥 뚫려 있다.
'반짝 한파'가 찾아왔던 지난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만난 롯데택배 기사 ㄱ(58)씨는 정신없이 상자를 나르면서도 왼손에 쥔 핫팩을 놓지 않았다.
지난 11일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여성 노동자 최아무개(51)씨가 야간 집품(물건 선별) 작업을 한 뒤 숨지면서, 냉난방 설비가 없는 물류센터 환경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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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난방설비 없이 장시간 선별작업
노동환경 개선 목소리 커지지만
업체, 화재 위험·구조적 특성 들어
전열기 설치 등 방한대책에 난색
지붕은 있지만 양옆은 뻥 뚫려 있다. 11톤 트럭이 드나드는 3층 높이 물류센터 출입구로 영하 10도의 냉기가 주변을 휘감는다. ‘반짝 한파’가 찾아왔던 지난 2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에서 만난 롯데택배 기사 ㄱ(58)씨는 정신없이 상자를 나르면서도 왼손에 쥔 핫팩을 놓지 않았다. 3년 전 일하다 동상에 걸렸던 손끝이 추워지기만 하면 ‘근질근질’하기 때문이다. 동료 최종설(60)씨는 “이런 날은 발이 너무 시리다”며 신발에 깐 ‘핫팩 깔창’을 보여줬다. 민종기(56)씨는 “1월 중순 영하 18도 한파 때는 정말 얼어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지난 11일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여성 노동자 최아무개(51)씨가 야간 집품(물건 선별) 작업을 한 뒤 숨지면서, 냉난방 설비가 없는 물류센터 환경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족과 노조는 “(고인이) 핫팩 하나로 한파를 견디며 일했다”며 산재라고 주장한다. <한겨레>가 접촉한 물류 노동자들도 핫팩이나 방한복으로 버텨야 하는 겨울철 새벽 장시간 작업이 늘 고역이라고 입을 모았다. 택배 회사들은 최소한의 방한 물품만 지급할 뿐 개선책 마련에는 손을 놓고 있다.
부산의 롯데택배 기사 박천용(40)씨는 “새벽 6시 출근해 밖에서 일하면 손에 감각이 없어진다. 군대 혹한기 훈련에 온 느낌”이라며 “개인용 전기난로 설치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반대했다”고 말했다. 쿠팡의 한 물류센터에서 ‘헬퍼’(택배 분류 전담)로 일하는 ㄴ(39)씨도 “난방 안 되는 곳에서 10시간 동안 일한다고 생각해봐라. 근데 개선책도 없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냐”라고 호소했다. ㄴ씨가 일하는 곳은 실내이지만 트럭이 오가는 커다란 양쪽 출입구 탓에 추위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는 “방한복이나 방한화도 따로 안 줘 내 돈으로 샀다. 동료 한명은 새끼손가락이 동상에 걸려 치료받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는 ‘현실적 이유’를 들며 방한 대책에 난색을 보인다. 롯데택배 관계자는 “화재 위험 때문에 전열기 설치는 금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가 숨진 뒤 쿠팡은 “유사한 업무가 이뤄지는 전국의 모든 물류센터(풀필먼트센터)는 화물차량 출입과 상품의 입출고가 개방된 공간에서 동시에 이뤄지는 특성 때문에 냉난방 설비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방한복 등을 추가 지급한다”고 밝혔다. 폭염·한파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정부 대책은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자료를 보면, 2016~2018년 한파로 인한 한랭질환으로 24명이 산재 승인을 받았다. 그중 운수·창고·통신 노동자가 3명, 운송 노동자는 2명이다.
물류센터 노동환경 개선은 의지만 있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한 대형 택배사 관계자는 “물류센터의 개방된 공간에 난방기구를 설치 못할 이유는 없다. 공간이 넓어 난방이 어려운 만큼, 작업자 개개인을 향해 송풍구를 달아 냉난방이 가능한 ‘공조 시스템’을 일부 센터에 설치했다”며 “앞으로 설비를 더 늘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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