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해제된 서울 도심 '변창흠식 공공개발' 대상 되나
정부가 설 전에 발표하겠다고 공언했던 공급대책 발표 시점을 2월 첫째 주 후반께로 잡고 최종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값 급등과 전세난 등이 집중된 서울 도심에 상당한 물량의 아파트를 공급하되, 공공재개발·공공재건축처럼 공공이 주도하는 ‘서울 공공개발’ 모델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체된 서울 도심 재개발이 재추진되는 것으로, 2000년대 무분별한 지정으로 홍역을 치렀던 민간 주도 뉴타운 모델을 답습하지 않을 수 있을지가 공급대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아파트 공급 부족 해소되나
공급대책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서울 부동산 시장 불안의 뇌관이 된 아파트 공급 부족을 해소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다. 서울의 아파트 거주 비율은 전국 평균을 크게 밑돈다. 국토교통부의 주거 실태조사를 보면, 2006년에서 2019년 전국 아파트 거주 비율이 41.8%→50.1%로 8.3%포인트 오를 때, 서울은 36.8%→42.2%로 5.4%포인트 느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대구 14.6%포인트(41.6%→56.2%), 부산 13.1%포인트(41.7%→54.8%), 광주가 12.4%포인트(53.1%→65.5%) 증가한 것에 견주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대도시권 가운데 서울처럼 아파트 거주 비율이 40%대인 곳은 없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서울보다 낮은 곳은 전남(38.5%), 경북(40.4%), 제주(25.4%)뿐이다.
더 큰 문제는 구별 불균형이다. 노원구(77.4%), 강남구(56.7%), 서초구(56.7%), 양천구(52.0%) 등은 아파트 비중이 절반을 웃돌지만, 광화문·여의도 등 일자리가 집중된 도심과 가까워 ‘직주근접’(직장과 주거지의 위치가 가까움)이 가능한 마포구(41.4%), 용산구(34.9%), 서대문구(37.3%), 동작구(36.3%) 등은 서울 평균에도 못 미친다. 광진구(20.2%), 관악구(22.6%), 강북구(25.6%) 등은 20% 수준으로 아파트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수요가 조금만 몰려도 시장이 과열될 수밖에 없다.
뉴타운 해제 저층 주거지역 공공개발 되나
아파트가 공급될 입지도 공급대책의 주요 포인트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파트 비율이 낮은 강북 지역을 동 단위로 개발해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뉴타운 사업’에서 해제된 지역이 후보지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연구원이 2018년 펴낸 ‘뉴타운·재개발 해제 지역 실태분석과 주거재생방향’ 보고서를 보면 2012년 서울시의 ‘뉴타운·재개발 수습방안’이 나온 뒤 사업 진척이 없던 뉴타운 사업지구, 일반 재개발·재건축 구역 등 모두 393곳이 해제됐다. 이 가운데 45%에 해당하는 175곳이 역세권 반경 250m에 있었고, 범위를 500m로 확대할 경우 해제 지역의 71%인 279곳이 포함됐다.
이들은 아파트 공급이 절대 부족한 동북권역(성북구, 중랑구, 동대문구 등)과 서남권역(영등포구, 관악구 등) 저층 주거지에 집중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대규모 단지 조성이 가능한 면적 10만㎡ 이상 구역은 뉴타운사업지구가 많았다. 특히 393곳 가운데 222곳은 도시재생이나 주거환경개선사업 등 주거재생 관련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서울연구원은 해당 보고서를 통해 이들 해제구역을 포함해 면적이 111㎢(3357만평)에 달하는 저층주거지에 대한 종합관리계획 수립을 제안하기도 했다. 저층주거지는 서울 전체 면적(605㎢)의 6분의 1을 차지한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장관 지명 직후부터 저층 주거지와 역세권을 서울 도심 공급의 ‘히든카드’로 내세웠는데, 이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 뉴타운 해제 구역이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용적률 완화 등 고밀개발이 가능한 역세권 범위를 현행 250m에서 500m로 확대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르면 오는 4월부터 역세권 일반 주거지역의 용적률이 최대 700%까지 완화되는데, 사업성이 없어서 좌초되었던 뉴타운 해제 구역 중 일부 역세권 저층주거지가 ‘공공개발’ 대상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서울시에서는 뉴타운 해제 구역을 중심으로 한 주택 공급 방안을 고민해왔다. 서울시의회가 의뢰한 ‘서울시 정비사업 출구전략의 한계 및 개선방안 연구’를 수행한 이창무 한양대 교수(도시공학과)는 “뉴타운이라서 과도하게 지정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경기 침체로 해제된 구역들에서 공급됐어야 하는 물량이 사라지면서 시장이 살아날 때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원주민 세입자 젠트리피케이션 막을 수 있나
전면 철거 방식의 재개발이 갖는 원주민과 세입자의 내몰림 현상(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는 것도 서울 공공개발이 연착륙을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변 장관이 2009년 세종대 교수 시절 쓴 논문을 보면, 2차 뉴타운 시범지구 전체 가구 14만7천가구 가운데 세입자 가구는 10만7천가구로 70%를 차지한 반면 이들에게 공급되는 임대주택은 세입자 가구의 19%만 수용한 수준에 그쳤다. 뉴타운 지역 원주민 재정착률이 17.1%에 불과하다는 서울시정연구원(옛 서울연구원) 연구 결과가 나오는 등 뉴타운 사업은 ‘주민 교체 사업’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박인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임대주택이나 임대상가 공급 등의 정책을 병행해 원주민뿐만 아니라 세입자, 생계활동을 하고 있는 상가 세입자들에게 미치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최우선이 돼야 한다”며 “뉴타운 사업 실패 이후 도시재생 등으로 큰 변화가 있었는데, 이를 일거에 부정하는 방식으로 주택 공급이 이뤄진다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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