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했다고 그래? EU-영국, 어쩌다 '백신 공급' 싸움

한지연 기자 2021. 2. 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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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이미지에 먹칠" vs "백신외교가 백신납치로 변했다"

코로나19(COVID-19) 백신 공급을 둘러싼 유럽연합(EU)과 영국 간의 갈등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양측은 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작업을 마무리하고 결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사진=[브뤼셀=AP/뉴시스]
EU 백신 차단 '초강수'… 권위 무너뜨렸다
영국 기반의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EU에 백신 공급을 축소하겠다고 하자 EU는 초기 물량을 맞춰야 한다고 압박했다. 급기야 영국 외 유럽 지역에서 생산되는 백신을 영국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벨기에에 있는 공장을 급습하기에 이르렀다.

EU의 반응은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세계보건기구(WHO)까지 나서 "이는 백신 국수주의이자 실질적 위험"이라고 EU를 비판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백신 비상사태에 직면한 EU가 결국 모두를 적으로 돌려세워버렸다"고 비판했다. 매체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새로운 미래관계 협상을 합의한 지 한달 만에 EU가 영국을 일방적으로 위협하는 존재로 변했다"며 "EU의 도덕적 권위가 무너졌다"고 백신 쟁탈전을 평했다.

CNN도 "남반구에선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백신을 접종조차 못했는데 유럽에선 추악한 백신 국수주의가 등장했다"고 비판했다.

우르즐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여론까지 일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유럽국가들의 공동 백신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것뿐만 아니라 자유무역시장과 법치주의의 대명사라고 불리던 EU의 이미지에 먹칠을 해 실질적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에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사진=[런던=AP/뉴시스]
"아스트라제네카·영국이 먼저 이기주의 불씨 심어"
그러나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이 먼저 갈등의 불씨를 만들었다는 비판 여론도 팽팽히 맞선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당초 3월 말까지 EU 27개국에 약 8000만회분의 백신을 공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벨기에 한 공장이 가동을 중단했다는 이유로 절반도 안 되는 3100만회분만 공급하겠다고 23일 밝혔다. 반면 EU와 달리 영국엔 백신이 차질없이 공급된다고 했다. 영국이 EU보다 석 달 먼저 계약했고 자신들은 선착순 원리를 따랐다는 것이다.

EU는 즉각 반발했다. 스텔라 키리아키데스 EU 보건담당 집행위원은 "선구매 계약에 그런 게 어디있느냐"며 "선착순 논리는 정육점에서나 통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발언은 기름을 부었다. 존슨 총리는 "우리가 EU에 남아 EU 백신 프로그램을 따랐다면 지금 더 애처로운 상황에 처했을 것"이라며 "우리는 (EU와 달리) 더 잘해왔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일방적인 백신 공급 지연 소식은 유럽 대륙 전체에 공포와 격분을 불러일으켰다"고 전했다. 영국이 전체 성인 기준 12.5%에게 백신 1차 접종을 마친 반면, EU의 접종률은 2.6%에 불과하다. 안드레이 플렌코비치 크로아티아 총리는 "(영국의) 백신 외교가 백신 납치로 변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EU의 백신 수출 차단 언급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단 평가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아스트라제네카와 EU 사이 긴장이 심화되면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으로선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초강수'를 내놓은 배경을 분석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사진=아스트라제네카 홈페이지, 뉴시스
'실수' 인정한 EU와 영국…"공동 협력할 것"
한바탕 소란을 치른 후 영국과 EU 모두는 사태 수습에 나섰다.

나딤 자하위 영국 백신 담당 정무차관은 텔레그래프에 "영국은 EU와 백신 관련 협력을 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며 "영국은 EU의 백신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EU 집행위원회와 생산적 대화를 했고, EU가 영국행 백신 공급을 차단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U 측은 영국으로의 공급 통제 계획을 "실수"라면서 뒤로 물렸다. 한 EU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EU가 백신 공급을 통제하기 위한 비상권한을 발동하겠다고 말한 것은 명백한 실수"라며 "문제가 될 수 있단 것을 깨닫고 일찍 변경하기로 한 것은 현명했다"고 말했다. 마이클 고브 영국 국무조정실장도 스카이뉴스에 "EU는 그들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했다"며 "영국은 이제 우리의 백신 프로그램의 성공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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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vivid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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