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칼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의 가공할 정체
보수가 못 지키고 진보가 '깽판'친 문명 한국을 소망할 원점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 586 운동권 패거리가 한 말이다. 그들이 의도한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그 적나라한 민낯이 최근 확실하게 드러났다. 시민사회를 억누르는 국가 통제 권위주의, 내 집 마련의 소박한 중산층 꿈까지 ‘보수화’라며 깨버리는 편향된 계급사관, 사유재산·시장·기업을 적대하는 선무당 사회주의, 역사 해석에서 “딴소리하면 징역 7년”이라는 사상 독재, 그리고 ‘여기선 원전 폐기, 북에는 원전 지원’이라는 ‘더 이상 벗길 껍질이 없게 된 발가벗은 임금님’의 알몸이 그것이다.
이런 판단을 뒷받침할 근거와 자료는 차고 넘친다. 삭제되었던 산자부 공무원들의 원전 관련 파일, 부동산 3법, 기업 3법,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 5·18 왜곡 금지법, 각종 ‘유공자’들과 유족에 대한 보상법들만 봐도, 이 586 집단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는 그야말로 ‘냄새가 진동’한다.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임종석은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정직 처분이 중지된 것은) 너무나 익숙한 기득권 냄새를 풍긴다.” 그러나 지금 이곳의 신판 기득권 세력이 누구인지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두 팔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막아서며 물어보라.
사회주의 혁명을 한 옛 저항 세력이 나중엔 어떻게 또 하나의 강고한 기득권 집단으로 타락했는지는, 2018년 작고한 캐런 다위샤(Dawisha) 마이애미 대학 교수가 쓴 ‘푸틴 마피아, 누가 러시아를 소유하나?’에서 여실히 설파했다. 그에 따르면 오늘의 푸틴 러시아는 법이 지배하는 정규 국가가 아니라, 푸틴과 그의 KGB(구소련 비밀경찰) 인맥 110명이 온갖 탈법과 폭력을 자행하며 공공재를 털어먹는 ‘떼도둑 체제(kleptocracy)’라 했다. 국가와 도둑이 구별되지 않고 서로 삼투해 있는 모양이다.
한국 586 집단이 푸틴의 러시아를 100% 빼닮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설치는 대로라면 그들의 혁명도 자칫 앞서간 사회주의의 역설을 뒤따라가기 쉽다고 경고해두는 정도는 무방할 듯싶다. 무엇이 이런 경고를 하게 만드나? 운동권 인맥이라는 배타적 밀교(密敎) 집단이 입법·행정·사법·민간 부문까지 모조리 휩쓸어 먹는 저 메뚜기 떼 폭풍부터가 그런 우려를 낳는다. 국가의 공공성과 중립성을 부정하고 국가를 그들 일당의 호주머니 물건쯤으로 치는 마르크스적 국가관이 읽히는 것이다.
이 운동 마피아는 그렇게 거머쥔 국가를 구사해 특정한 정치·경제 이익을 도모하려 한 정황도 간파된 바 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서 보듯, 그들은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국가기관의 권능을 온통 들이부었다. 라임, 옵티머스 금융 사기 사건에도 현 정권 공직자들의 입김이 서려 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운동꾼들의 이런 의혹을 검증하기 위해 윤석열 검찰총장은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국민만 바라보고 달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는 역사 속에서 산다.
운동 인맥의 국가 도구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조선일보 1월 25일 자는 이렇게 전했다. “낙하산 없앤다더니 금융기관 9곳 수장 전원 ‘관피아’”. 말로는 적폐 청산 운운이지만 실제론 여전한 적폐 잔치였다는 이야기다. 586 집단은 젊은 시절 이런 독식·독점에 대항했노라 내세워 왔다. 그러나 그들은 이젠 동물농장의 새 포식자가 되었다.
586 집단은 이 시대의 갈등을 나쁜 농장주에 대한 모든 동물의 혁명이라고 “‘썰’을 푼다. 가짜 프레임이다. 오늘의 갈등은 농장을 빼앗은 특권 돼지들에 대한 나머지 동물들의 저항이다. 특권 돼지들은 혁명 공약을 저버린 채 두 다리로 걷고 사람 옷을 입고 술을 마신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는 궤변과 함께. 이 우월감에 기초해 그들은 난폭한 입법 독주, 절차의 불법성, 미운털 판사 탄핵, 도덕적 해이를 자행한다. 나머지 동물들의 저항은 그래서 초보적 자유·민주·공정 투쟁, 생존권·행복추구권 투쟁, 거짓과 뻔뻔스러움에 대한 구역질이다.
586 앙시앵레짐(구체제)은 20년 집권을 호언한다. 지원금 받아먹고 표 찍어주는 국민이 있는 한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 각성이 늘어나는 한 절망할 필요는 없다. 보수는 계속 죽었다. 진보도 정치·경제 실패로, 부도덕으로, 성폭행으로 죽었다. 보수가 지키지 못하고 진보가 깽판 친 ‘문명 한국’을 소망할 원점에 섰다. 웰빙 보수, 패션 기회주의, 위선적 진보, 대깨문 좌파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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