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역사가 된 현대家 1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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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자서전엔 어린 시절 얼마나 가난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나온다. “우리 형제들은 두루마기 한 벌로 세배를 돌았다. 내가 먼저 두루마기를 입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 세배하고 오면 그 두루마기를 받아 입고 인영이, 순영이가 차례로 세배를 나갔다” 6남2녀 중 막내로 두루마기 마지막 순번이었을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별세했다. 영(永)자 돌림을 쓰는 현대가 창업 1세대가 이제 모두 세상을 등진 것이다.
▶고향인 강원도 통천의 소학교 졸업 후 돈 벌러 가출한 정주영 회장은 서울 신설동에 자동차 수리공장을 차린 뒤 부모와 형제를 불러들여 20명 넘는 식솔의 생계를 책임졌다. 가방끈이 짧은 걸 아쉬워한 정 회장은 동생들은 외국 유학까지 보내 인재로 키웠다. 신문기자 출신 5남 신영이 독일 유학 중 숨지자 그의 이름을 딴 언론인 지원 기금까지 만들 정도로 동생 사랑이 각별했다.
▶장남 사랑이 유난했던 정 회장의 모친은 “내가 잘난 아들 정주영을 낳아놨으니 산신님은 정주영이 돈을 낳게 해주시오”라고 날마다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하늘도 감동했는지, 장남뿐 아니라 형제들 모두 대한민국 대표 기업가가 됐다. 정씨 형제들은 경부고속도로, 소양강댐, 원자력발전소를 짓고, 중동 건설붐을 이끈 현대건설 신화를 만들어 냈다. 동생들은 하나둘 분가해 한라그룹(둘째 정인영), 성우그룹(셋째 정순영), 현대산업개발(넷째 정세영)을 키워냈다. KCC그룹 정상영 회장은 형의 유학 권유를 뿌리치고 1958년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해 일찌감치 기업가 길을 걸었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지 반세기 만에 이뤄낸 ‘한강의 기적’은 현대와 정씨 형제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현대그룹은 건설, 자동차, 조선, 전자 등 기간 산업을 자력으로 일구어냈을 뿐 아니라 1970년대 중화학 산업화를 앞장서 수행했다. 자동차와 조선은 세계 최고 경쟁력을 지녔고, 건설은 확고부동한 국내 1위다. 정씨 형제들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집념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국적 기업가 정신의 전형을 보여준다.
▶현대가(家)는 ‘몽(夢)’ 자를 쓰는 2세대를 넘어 ‘선(宣)’ 자를 쓰는 3세대로 넘어가는 중이다. 범(汎)현대그룹의 기업들도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의 현대·기아차가 수소차 등 미래차 분야를 선도하고, 정기선 부사장의 현대중공업은 고부가가치 선박 메이커의 입지를 굳혔다. 정주영 회장은 “제2, 제3의 경제 도약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할 기업은 절대적으로 ‘현대’라고 생각한다”는 유지(遺旨)를 남겼다. 사람이 바뀌어도 기업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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