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한달… 파리의 영국계 마트가 텅텅 비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2021. 2. 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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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다이어리]
파리 16구에 있는 영국계 마트 막스앤드스펜서 매장의 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손진석 특파원

지난 29일 오후 프랑스 파리 16구의 영국계 식품마트 ‘막스앤드스펜서.’ 평소 수십 명의 손님들로 북적이는 매장이지만 불과 4명의 손님만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들은 장바구니에 좀처럼 물건을 담지 못했다. 진열대가 텅텅 비어 비치된 상품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폐업을 목전에 둔 것처럼 썰렁했다. 파리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는 영국 여성 나탈리는 “어릴 적부터 자주 먹던 귀리가 들어간 우유가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파리와 근교에 21개 매장을 둔 막스앤드스펜서는 영국산 식재료나 영국에서 만들어 가져온 샐러드·샌드위치 등 즉석 식품을 판다. ‘영국의 맛’을 선사하는 곳으로 인기를 끌지만 요즘은 통 상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음료나 주류는 그나마 일부 진열돼 있지만 식재료나 샌드위치 같은 즉석 식품은 아예 없었다. 한 프랑스인 중년 여성은 “영국산 소시지와 샌드위치용 빵을 사려고 종종 왔는데 이제 여길 와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매장 한편에는 즉석에서 빵 만드는 코너가 있지만 재료 부족으로 운영을 중단했다.

파리 16구에 있는 영국계 마트 막스앤드스펜서 매장의 진열대가 텅 비어 있다./손진석 특파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때문이다. 올해 1월 1일부터 영국과 EU가 완전히 결별하면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통관 절차가 생겼다. 예전의 자유로운 상품 수출입이 막혔다. 특히 먹을거리는 원산지 신고가 복잡하고 EU가 엄격한 위생 검사를 실시하면서 영·불해협을 건너기가 까다로워졌다. 매장 내부에는 ‘영국과 EU 사이의 새로운 수입 규제로 일부 상품 이용이 불가하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매장 직원 케빈은 “브렉시트로 통관 절차가 생긴다고 했지만 진열대가 텅 비어버릴 정도가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해 당황스럽다”고 했다. 이 문제가 금방 해결될 분위기도 아니다. 프랑크 리스터 프랑스 통상장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영국산 먹을거리의) 통관이 원활하게 되도록 노력은 하고 있지만 브렉시트에 따른 타격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파리의 막스앤드스펜서 매장에는 이와 같이 'EU와 영국 사이의 새로운 상품 수입 규정 때문에 일부 상품을 이용할 수 없게 돼서 죄송하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손진석 특파원

막스앤드스펜서는 코로나 사태와 브렉시트가 겹쳐 큰 타격을 입었다. 최근 2년 사이 세계적으로 140여 매장의 문을 닫았고, 지난해에는 7000명의 감원을 발표했다. 이날 매장에서 만난 니컬러스라는 영국인 중년 남성은 “브렉시트를 해서 대체 뭘 얻을 수 있다는 건지 (브렉시트 찬성파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불편함이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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