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굶는 후배에 10만원 '연대 키다리 선배'
지난달 30일 밤 10시 2분, 연세대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연세대 에브리타임’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12학번 졸업생'이라고 밝힌 작성자는 “아직 개강 전이긴 하지만, 생활이 어렵거나 밥을 제대로 못 먹으면서 공부하는 친구가 있으면 댓글을 달아달라”고 했다. 그는 “감사하게도 보너스를 받아서 작게나마 나눌 수 있게 되었다”며 “큰 금액은 아니지만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도 했다.
재학생들의 댓글이 줄줄이 달리기 시작했다. “소득분위 1분위의 차상위 계층이고, 편모 가정인데 어머니가 관절염으로 일을 못 하셔서 제가 등록금을 다 내야 한다.” “통장 잔고에 딱 2만원 남았는데 설날 전까지 버텨야 한다.”
글이 올라온 지 1시간 30분쯤 지난 11시 31분부터 ‘입금 인증샷'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키다리아저씨'라는 이름으로 10만원이 입금된 계좌를 올린 학생은 “14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절연을 선언해 남은 가족이 아무도 없다”며 “교과서를 살 돈이 없어 학교에서 망신을 당하고, 급식비를 낼 돈이 없어 쫄쫄 굶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세상을 불신하고 미워했는데, 세상은 살 만하고 아직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는 걸 오늘 깨닫는다”고 했다. 다른 학생도 “할머니, 엄마와 살고 있는데 2020년 엄마가 일을 무기한으로 쉬시면서 집안 상황이 너무 안 좋았는데 큰 힘이 됐다”고 하는 등 총 3명이 ‘입금 인증샷'을 올렸다.
이 글에 달린 총 62개의 댓글 중 도와달라는 사연은 15개, 나머지는 ‘선배님처럼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저도 언젠가 꼭 돌아와 나누겠다' ‘선한 영향력을 끼쳐 주셔서 감사하다'와 같은 내용이었다.
20대 후반 직장인으로 추정되는 ‘연세대 키다리아저씨’의 선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4월 연세대 커뮤니티에 처음 ‘월급 받고 기분 좋은데 혹시 돈 없어서 밥 굶는 친구 있으면 댓글을 달아달라'고 글을 남겼다. 이후 7월, 올 1월에는 ‘보너스를 나누고 싶다'고 썼다. 대부분 익명으로 글을 올렸지만 문체나 내용이 비슷하고 매번 ‘키다리아저씨'라고 입금한다는 점에서 동일인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매달 월급의 10분의 1을 ‘십일조’처럼 어려운 후배들에게 따로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이 사실 역시 후배들의 ‘인증샷’을 통해 알려졌다.
학교도, 재학생들도 ‘키다리아저씨’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신원에 대한 궁금증이 일자, 글쓴이는 작년 4월 커뮤니티에 “내가 누군지를 밝힐 생각은 전혀 없다”고 적었다. 10만원 후원에 대해선 “진짜 막막하고 답답할 때, 10만원만 있으면 한 끼 밥이라도 걱정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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