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공무원은 어쩌다 정권의 手足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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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봉사자이고 싶지만 ‘정권의 도구’ 된 처지에 좌절한다
최근 행정고시에 합격했다는 한 20대 대학생과 지인 소개로 밥을 먹었다. 한때 기자에 도전해볼까도 생각했었다는 그는 공무원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어서요!” 일행은 웃어버렸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이 자영업자 손실 보전을 법으로 못 박겠다는 여당에 반대했다가 총리에게 “기재부의 나라냐”며 질책당한 다음 날이었다.
너도나도 공무원이 되려 한다더니 요즘 기류가 바뀌었다. 공무원 경쟁률이 점점 낮아지고(2010년 49대1→2020년 36대1) 젊은 사무관의 퇴직도 늘고 있다. 2010년까지만 해도 5급 공무원은 임용 10년 이내 퇴직자가 ‘0명’이었다. 지난 한 해 동안은 1년도 안 된 젊은 사무관이 5명 넘게 그만뒀다고 한다. 공무원 지망생들이 한때 가장 선망했던 기재부까지 기피 부처로 추락했다. 올해 신입 사무관 지원자가 정원보다 적었다.
얼마 전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적자 국채 폭로자’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은 “정권에서 답을 정해놓고 공무원에게 해법을 만들어내라고 한다. 정상이 아니다. 적어도 문재인 정권은 이래선 안 되지 않나”라고 했다. 서울대 온라인 게시판에 한 ‘중앙부처 공무원’이 올린 글이 젊은 공무원 사이에서 돌고 있다. ‘상부는 인사권에 직접 관여하기 때문에 행정부 상사들은 굽실거리며 복종하고 실무자를 쪼아댄다….’ 이 글엔 ‘상부’란 단어가 다섯 번 나온다. 신재민씨는 “‘상부'는 청와대 등 정권을 지칭하는 공무원들의 용어”라고 했다.
이 ‘상부’가 내리는 지침이 어느 지경까지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일이 또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만나 덕담처럼 ‘발전소’ 이야기를 꺼낸 후 산업자원부 공무원들이 북한 원자력발전소 건설 방안 자료를 만들었다고 한다. 월성 원전 폐지를 결정해놓고 그 논리를 산자부에 만들어내라 강요하더니, 한쪽에선 북한에 원전을 지어줄 방안까지 내놓으라고 했다는 얘기다. 원전 기술은 핵 개발과도 연결된다. 잘못하다간 공무원이 이적 행위를 했다는 비난까지 받게 생겼다. 이미 월성 원전 관련된 자료를 삭제한 건으로 공무원이 구속까지 됐다.
요즘 대기업에 비해 공무원 급여는 높지 않다. 일부 경제부처는 야근이 일상일 정도로 업무 강도도 세다. 대신 공무원은 나라 살림을 관리한다는 뿌듯함, 국가 정책의 틀을 기획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틴다. 하지만 정권이 관료를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일이 반복되면서, 지난 몇 년 사이 이런 자부심은 많이 사라졌다는 게 젊은 공무원들의 이야기다.
한 경제 부처 사무관 B씨는 이렇게 말했다. “정권은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명분으로 직업 공무원을 조집니다. 청와대의 인사권에 큰 영향을 받는 과장 이상 간부들은 상부 눈치만 봅니다. 그러다 보니 실무자인 사무관한테까지 비합리적 지시가 내려오고요. 대부분 답이 안 나오는 정책인데…. 뭐라도 만들어내야 합니다. 괴롭습니다.”
‘국민 전체의 봉사자’(국가공무원법)여야 하는 공무원이 ‘정권의 봉사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젊은 사무관들이 정권의 목표를 위한 수단을 만들어내란 억지 지시를 이행하느라 밤을 새운다. 사명감 넘쳤던 청년 공무원은 정권의 수족(手足)이 된 처지에 좌절한다. 나아질 기미도 안 보인다. 공무원, 나 같아도 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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