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래 “장애인 돼 겪은 삶보다 지난 1년이 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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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그룹 클론 출신 강원래(52)씨가 지난달 “K팝은 세계 1등, 방역은 꼴찌”라는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지난 20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마련한 간담회에서 나온 그의 발언은 자영업자의 울분을 담은 것이었다. 2018년 서울 이태원에 주점을 연 그는 코로나가 덮친 지난 1년간 장사를 고작 20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친문 성향 네티즌들의 비난이 폭주했고 그는 발언 하루 만에 “국민과 방역 관계자, 의료진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SNS에 올렸다. 설화(舌禍) 일주일 만에 만난 강씨는 “평생 먹을 욕을 이틀간 다 먹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비판하고자 한 건 과학적 근거도 전문성도 없이 희생양 찾기가 돼버린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이라고 했다. 태풍급 삭풍이 몰아쳤던 지난 28일, 이태원역 근처 강씨의 가게에서 휠체어를 탄 그를 만났다.
-’할 말 했다'는 반응도 많았을 텐데?
“이태원 상인들은 ‘너무 착하게 얘기하면 아무도 우리 목소리에 관심 없다. 어디 화염병이라도 던지자’고 할 만큼 분노에 차 있다. 직장인들은 그 고통을 모른다. 예컨대 회사가 코로나 사태를 이유로 ‘회사 나오지 마라. 단 그 기간 월급은 못 준다. 세금도 각자 알아서 내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지난 1년간 우리가 그런 처지였다. 가게 문은 닫았지만 월세와 인건비 같은 고정비에 세금도 내야 했다. 우리는 지금 생존의 벼랑 끝에 서 있다.”
강씨는 2018년 이태원에 ‘문 나이트(Moon Night)’라는 주점을 열었다. 인생 첫 장사였다. 가게 이름은 90년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춤꾼들이 모여들었던 동명의 클럽에서 땄다. 박남정·이주노 같은 스타들이 춤사위를 자랑하던 그 시절 문 나이트는 룰라·듀스·영턱스클럽 같은 유명 그룹의 산실이기도 했다. 강씨는 “옛 문 나이트는 없어졌지만 댄스계의 ‘쎄시봉’ 같은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하지만 강씨는 2020년 한 해 내내 사실상 휴업해야 했다. 코로나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 차원에서 유흥 업소는 수시로 집합 금지 명령 대상이 됐다. 식당, 카페 등과 달리 유흥 업소는 거리 두기 2단계부터 아예 영업 금지였다. 거리 두기가 완화됐던 작년 10월에도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 자발적으로 문을 닫았다. 강씨는 그 사이 월 880만원, 하루 30만원꼴 임대료는 꼬박꼬박 내야 했다. 그는 “작년 10월 이후부터는 보증금 1억원에서 월세는 삭감하고 있다. 앞으로 5개월이면 그마저 다 까먹는다”고 했다. 강씨는 결국 작년 11월 가게를 내놨다.
-자영업자의 피해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불가피한 면도 있지 않은가?
“이태원 상인들도 아이가 있고 부모님이 있다. 방역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정부가 하라는 대로 다 했다. 그래서 지금 확진자가 줄었나. 1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닥친 건 문을 연다는 기약 없는 또 다른 한 해다. 정부의 거리 두기 정책이 정말 똑똑한 전문가들이 모여서 만든 것인가 묻고 싶다. ‘아예 문을 닫으라'거나 ‘몇 시이후로는 모이지 말라’는 정도의 정책은 우리 같은 사람도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내일 모레까지만 기다려달라’ ‘2주만 더 참자’는 식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달라는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모르는 정부 당국자들을 향해 ‘(당신들도) 월급 안 받고 일해보라’고 항변하고 싶다.”
“정부 하라는대로 다 했지만 결국 보증금 1억마저 다 날리게 돼”
-이태원 클럽을 찾은 일부 젊은 층의 행태도 문제였는데?
“지난 5월 근처 한 클럽에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가면서 이태원은 깊은 낙인이 찍혔다. 이곳에서 30~40년 장사한 분들은 ‘이태원 가면 에이즈(AIDS) 걸린다’던 80년대 말~90년대 낙인 이후 최악의 사태라고 한다. 어떤 노력도 무용지물이었다. 술 마시는 곳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 많이 움직이는 곳인지 과학적으로 따지지 않고 나오는 ‘이태원발 코로나’라는 식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힘겨웠다.”
-정부가 어떻게 해야 했나?
“우리에겐 생존이 걸린 영업 제한을 하면서 정부는 명확한 근거나 분석을 제시한 적이 없다. 도대체 일반 식당과 유흥 주점, 지하철과 교회 등이 감염 위험 면에서 얼마나 다른가. 그저 어디선가 감염자가 나오면 ‘우리는 열심히 하는데 그 집단 때문’이라는 식의 남 탓, 희생양 찾기 아니었나. 차라리 대한민국 전체가 한 석 달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으면 지금쯤은 장사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강씨는 “지난 한 해 구청 등에서 단속은 하루에도 서너 번씩 나왔지만 피해 현장 조사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나는 그래도 집이라도 있어 길거리 나앉을 처지는 아니지만 7~8년씩 종업원으로 일하다 사채까지 빌려 개업한 젊은 친구들은 집세를 낼 수 없어 가게에서 먹고 자며 하루하루를 발버둥 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세계 최고 지도자 보유했다는 그들, 우리 방역 정책이 정말 최고라 생각하나”
-그런데도 왜 발언 하루 만에 사과를 했나?
“그날 간담회에서 서울 다른 지역 자영업자들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감정이 격해졌다. 기약도 없이 장사하지 말라고만 하는 정부나 지자체의 ‘방역 정책’을 비판하려던 게 단어 선택을 잘못했다. 내 말 한마디 탓에 자영업자들의 고통이 묻히고 (발언이) 정치적으로 해석될까 봐 걱정됐다. 외국 보상 방역 정책 등을 사례로 제시하며 더 똑똑하게 말했어야 했다.”
강씨가 사과 결심을 한 데는 “너 큰일 난다”는 지인들의 걱정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강씨는 KBS 제3 라디오 장애인 방송을 14년째 진행 중이다. 그는 2000년 11월 서울 강남의 한 사거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좌회전하다 불법 유턴하던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당대의 댄스 스타가 하루아침에 두 다리를 못 쓰는 장애인이 된 것이다. 장애인의 눈높이에서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건 그에게 고정 수입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강씨는 “짧지 않은 세월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정치·종교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하지만 이번 일로 라디오 MC에서 잘릴까 봐 걱정하는 친구가 많았다”고 했다.
-비난 메시지를 얼마나 받았나?
“기사 댓글들은 아예 보지도 않았다. 내 휴대폰에만 100건 넘는 메시지가 왔다.”
-어떤 내용이었나?
“단순한 욕설은 드물었다. ‘세계 최고 지도자가 나타났는데 네가 뭔데…’ ‘대통령께서 나라를 얼마나 잘 이끌고 계신데 너까짓 게…’ ‘안철수 지지하지 말고 대통령님 사랑하라’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참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긴 메시지도 많았다. 광복 때부터 시작해 이승만은 잘못됐다며 대한민국 현대사 강의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가게 이름이 왜 하필 문 나이트냐’며 시비 거는 이도 있었다.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싶어 링크된 그들의 페이스북 페이지 등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진을 배경으로 하는 게시물이 많았다. ‘아 이런 사람들이 언론에서 말하는 대깨문인가’ 싶었다.”
-의사, 간호사란 분들의 비판은 없었나?
“한 번도 없었다.”
-사과하니 비난이 잦아들던가?
“한동안 계속됐다. 아내(김송)도 메시지 많이 받았다. ‘사과할 일 아니다’라는 격려나 응원도 많았다. 나한테 비난 메시지 보낸 사람들한테 과연 우리나라의 방역 정책이 세계 최고인지 묻고 싶다.”
강씨는 인터뷰 다음 날인 29일 소셜미디어에 중국 당나라의 재상 누사덕(婁師德)이 남긴 ‘타면자건(唾面自乾)’이라는 사자성어를 올렸다.’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면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이다. 강씨는 누사덕을 인용해 “어떤 사람이 나에게 침을 뱉은 것은 나에게 뭔가 화가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 자리에서 침을 닦으면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게 되어 상대는 틀림없이 더욱 더 화를 낼 것이다. 침 같은 건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말라 버리니 그런 때는 웃으며 침을 받아 두는 게 제일”이라고 했다.
-안철수 후보의 간담회였다는 점에서 정치적 해석도 있는데?
“주변 상인들이 ‘강원래씨나 홍석천씨 같은 이가 나서야 기사도 나오고 하지 않겠느냐’고 해서 나갔다. 야당에 입당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하는데, 나는 정치의 정(政)을 한자로도 못 쓰는 사람이다. 전혀 관심 없다.”
“아내에게도 비난 메시지…난 정치의 정(政)자도 모른다”
-조국·추미애씨를 비판했던 가수 JK김동욱씨가 방송을 그만두게 됐다.
“그런 이유로 교체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번에 경험해보니….”
올해 쉰둘인 강씨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볼 때면 돋보기를 써야 한다. 하지만 댄스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 이태원에 가게를 연 뒤 2019년 명지대에서 실용 무용 석사학위를 땄다. ‘K팝과 포인트 안무에 관한 고찰’이라는 석사 논문을 썼고 ‘대한민국 댄스뮤직 100년사’라는 책도 냈다. 박남정·이주노·룰라·김완선 등 현재 K팝 세대의 선배 세대를 인터뷰해 그 역사를 정리했다. 아내 김송씨는 “남편이 밤샘도 많이 했다”고 했다. 강씨는 올해 박사과정에 도전할 생각이다.
-정부·여당이 자영업자를 위한 영업손실보상법을 만든다는데, 가게를 다시 열 생각 있나?
“다시는 장사 안 한다. 쓸데없는 희망 고문에 더 이상 시달리기 싫다. 이제 5개월 뒤면 남은 보증금도 다 날아간다. 지금이라도 가게를 하겠다는 분이 있다면 임차료 5개월치 다 드릴 생각이다. 지난 20년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깨달았다. 일부러라도 많이 웃자는 것이다. 하지만 빈 가게를 하릴없이 지켜야 했던 지난 1년은 처음 장애인이 돼 맞닥뜨린 낯선 삶보다 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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