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新券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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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가까워지면 신권을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 가끔 친척이나 지인이 은근히 부탁해올 때도 있다. 아무리 은행원이라고 해도 고객에게 주기도 부족한 신권을 따로 마련할 재주는 없다. 그럴 때마다 무능하다는 오명을 얻게 되는데, 어쩐지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억울한 마음이 든다.
한국은행에서 금방 찍어 낸 신권과 이미 사용되고 있는 구권의 금액적인 가치는 똑같다. 신권에 새겨진 은빛 홀로그램 띠가 더 선명하다고 해서 5만원권이 5만1000원의 가치를 갖는다거나, 낙서 된 5만원권이라고 해서 4만9000원으로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세뱃돈이나 용돈으로 ‘신권’을 선호하는 걸까? 그것은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설날에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돈을 준다는 서사, 어쩌면 스토리텔링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친구 생일 선물로 집에 꽂혀 있는 위인전을 주곤 했다. “널 보면 이순신 장군이 떠올라.” “네가 나중에 에디슨처럼 될 것 같아.” 집에 쌓여 있는 책을 처분하려는 속셈이었지만 반응이 괜찮았다. 그때 나는 서사라는 것에 힘이 있고, 스토리텔링이 물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 기억을 되살려 이번 설날에는 신권을 구해달라는 분들에게 색다른 제안을 해보았다.
손자에게 용돈을 주려는 어르신들에게 문화상품권을 추천해 드렸다. 온라인 게임 머니를 환전할 때 돈보다 문화상품권이 더 편하다. “필요한 게임 아이템 사는 데 보태”하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중소기업 사장님께는 기프트카드를 권해 드렸다. 요즘에는 현찰을 거의 쓰지 않으니까. 우아하고 세련된 기프트카드는 관리하기도 편하고, 계산할 때마다 사람들이 이게 뭐냐 물어서 자연스럽게 보너스를 뽐낼 수 있다고.
사실 설날 전에 교환된 신권은 대부분 며칠 안에 지점 ATM으로 되돌아온다. 상태는 그대로지만 다시 돌아온 돈은 더 이상 신권의 가치가 없다. 그렇게 회수된 신권과 마주하면 이게 뭐라고 그렇게 구하고 다녔는지 허탈한 기분이 든다. 이번 설에는 신권 말고도 각자만의 스토리텔링을 담은 다양한 선물로 소중한 마음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쨌든 중요한 건 마음이니까.
2월 일사일언은 윤치규씨를 비롯해 이지수 번역가·'아무튼, 하루키’ 저자, 박준우 셰프·음식칼럼니스트, 김선자 길작은도서관 관장, 이충엽 연쇄창업가·업라이즈 대표가 번갈아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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