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5] 아이들을 곡하다[哭子]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잃고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슬프고 슬픈 광릉 땅
무덤 한 쌍이 마주보며 솟았네.
쏴쏴 바람은 백양나무에 불고
도깨비불은 무덤에서 반짝인다.
지전(紙錢)을 살라 너희 혼을 부르고
술을 따라 너희 무덤에 붓는다.
나는 아네. 너희 형제의 혼이
밤마다 서로 만나 놀고 있을 줄.
배 속에 아이가 있다만
어찌 자라기를 바라랴?
부질없이 슬픈 노래 부르며
피눈물 흘리며 소리 죽여 운다.
-허난설헌 (許蘭雪軒·1563∼1589)
(강혜선 옮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생생하게 표현한 5언고시. 마음 놓고 울 수도 없었던 사대부 집안의 여인은 “소리 죽여” 울 수밖에. 시를 써서 피눈물이 흐려졌을까, 진해졌을까.
강릉의 명문에서 태어난 허난설헌은 동생 허균과 함께 글을 배웠다. 15세에 김성립과 혼인했으나 글에 취미가 없고 밖으로만 나도는 남편, 시를 짓는 며느리를 좋아하지 않는 시어머니 밑에서 고독하게 살다 남매를 잃은 뒤에 배 속의 아이까지 잃었다. 오빠가 귀양 가며 친정은 몰락했고 난설헌은 한시로 슬픔을 달래다 27세에 요절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작품을 모두 소각했는데, 허균이 친정에 보관된 누이의 시편들을 명나라 사신에게 주어 1606년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었다.
살아서 난설헌은 세 가지를 후회했다 한다. 조선에서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김성립과 혼인한 것. 그때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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