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바위 31
김정수 시인 2021. 2. 1. 03:04
[경향신문]
내 심장 한 모서리
나무 한 그루 심네
비 그친 저 아득한 거리에서
옮겨온 나무
눈보라가 와서 가지를 흔들 때
혹은 노을 한 보자기 걸쳐 나부낄 때
아픔을 견디며 잎 내고 꽃 피워 올릴 때
못 견디게 보고 싶은 것들
내 심장에 뿌리 깊게 뻗어
나무 한 그루 살고 있네
문효치(1943~)
바위는 한번 자리 잡으면 떠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묵묵히 풍화를 견딘다. 어지간한 비바람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바위는 옆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 위로 기어다니는 개미나 자벌레를 통해 세월의 변화를 감지한다. 그들의 쉼터나 은신처가 되어주기도 한다. 시인은 ‘바위’ 연작시 70편을 묶은 시집에서 “함묵과 무표정의 발언을 채록”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 꾹 닫은, 마음속에 쟁여둔 침묵의 언어가 시(詩)인 셈이다.
시인은 보고 싶은 마음을 한 그루의 나무를 통해 보여준다. “내 심장 한 모서리”에 심은 나무는 그리움이다. “비 그친”이란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는, 그런 후에 “아득한” 곳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살아서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의 거리다. 눈보라와 노을이라는 외적 환경, 잎과 꽃이라는 내적 성숙의 시간을 보내야만 “못 견디게 보고 싶은 것들”이 심장 깊이 뿌리를 내린다. 흔들리고 나부끼며 견딘 날들이 참으로 애절하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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