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282] ‘미친놈’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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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광기와 예술’(조민환)이라는 두툼한 책을 읽으면서 지나온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광자(狂者)’의 미학을 다뤘다. 동양 전통에서는 공자 이래로 ‘미친놈[狂者]’을 존중하는 전통도 일부 있었다고 본다. 공자가 정치한다고 주유천하할 때 ‘접여’라는 광인을 만나서 한 소리 들었다. 의역하면 “당신,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이러고 다니는데 말짱 헛일이다. 그게 그리 쉬운 줄 아나. 이거 다 시간 낭비다. 왜 이리 험난한 인생을 살고 있나? 인생 짧다.” 공자가 타고 있던 수레에서 내려 이 인물과 이야기를 나눠보려 하였으나 접여는 총총히 사라져 버려서 대화하지 못했다.
공자의 수레에 붙어서 돌직구를 날렸던 접여는 초나라의 광인이었다. 원래 이름은 육통(陸通)인데 당시 사람들이 접여(接輿)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유명인사나 고관대작이 수레를 타고 지나가면 그 수레(輿) 옆에 붙어서(接) 시비를 걸거나 집적거리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 접여를 인물로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 행보에 대해서 충고를 더 들어보려 하였지만 접여는 그 정도에서 피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더 이상 이야기해 준다고 해서 공자가 정치를 그만둘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메시지는 짧아야 좋다. 공자에게 한마디는 해준 접여야말로 광인의 미학, 광인의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광기가 예술 장르, 즉 그림과 글씨에 접속되면 작품이 많이 나왔다. 오로지 부동산과 주식에 붙잡혀 있는 범부들에게 그 어떤 통쾌감을 주는 작품 말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조선조의 화가 임희지(林熙之·1765~?)의 인생에서 보여준 광기가 특히 통쾌하였다. “배를 타고 교동도(강화군 교동면)에 가다가 폭풍을 만나서 배가 거의 뒤집어질 상황이었다. 노련한 뱃사람들도 혼이 빠져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만 정신없이 부르는데, 오직 임희지만 갑자기 껄껄대며 웃으며 깜깜한 구름 속 허연 물결 사이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파도가 잠잠해진 뒤에 사람들이 춤을 춘 이유를 물으니 ‘누구든지 한 번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다 가운데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장관은 쉽사리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어찌 춤을 추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저자는 스티브 잡스의 1997년 광고 문구 ‘자기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친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도 광자 미학의 전형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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