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못막은 10년 단골의 스토킹… 결국 살인
지난해 5월 4일 오전 9시50분, 경남 창원시 성산구 한 아파트 주차장. 흉기를 쥔 남성이 “죽어라” 고함치며 50대 여성에게 달려들었다. 온몸을 여러 차례 찔린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심한 출혈로 숨을 거뒀다. 피해자 A(59)씨는 이 동네에서 1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던 여주인. 가해자 B(43)씨는 이 식당이 개업할 때부터 자주 드나들던 단골손님이었다.
애초 이 사건은 B씨 초기 진술에 따라 손님이 식당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우발적 범행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사와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전혀 다른 사정이 드러났다. 최근 2심 재판부는 “A씨에 대한 일방적 호감을 거절당한 B씨가 집착과 피해 의식, 질투심, 혐오감 등에 사로잡혀 저지른 범행”이라며 B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집착과 질투심이 빚은 살인극
사건 발생 10시간쯤 전, A씨 식당에서 난동 사건이 벌어졌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인데 식당에 다른 손님이 있는 것을 본 B씨가 화를 내며 행패를 부린 것이다. B씨는 “오후 10시 이후 손님 안 받는다더니,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사람 가려서 받느냐”며 A씨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파출소로 끌려간 B씨는 진술서를 쓰고 풀려났다. 경찰은 ‘단순 영업 방해’라고 판단했다.
술을 더 마신 B씨는 새벽 무렵 A씨 집 아래층에 있는 자신의 친누나 집에 갔다. 아파트 위층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건 발생 몇 분 전, 위층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이 났다. 누군가 현관문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들리자 B씨는 흉기를 들고 따라나섰다.
B씨는 평소에도 A씨를 심하게 괴롭혔다고 한다. A씨 휴대전화엔 B씨의 집착이 빚은 스토킹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난해 2월 초부터 사건 직전까지 석 달간 B씨는 A씨에게 전화 100여통을 걸었다. A씨가 수신을 거부했지만,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가리지 않고 전화 공세가 계속된 날도 있었다.
문자 메시지도 수십 통 보냈다. ‘여시(여우) 같이 하지 마라’ ‘내 전화 끊지 마라’. 하지만 A씨는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신고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스토킹 정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A씨가 B씨 가족을 찾아 호소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작년 9월 1심 판결문에는 B씨의 일방적 애정 공세가 잘 드러나 있다. “어릴 때부터 연상에게 끌려 기대고 싶었는데” “누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는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거절해”. 재판부는 “이 같은 진술과 통화 녹취 내용 등을 볼 때 A씨에게 일방적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작년 12월 23일 2심 재판부는 B씨에 1심과 같은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B씨는 불복했다. 재판을 지켜본 A씨 가족들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B씨 태도가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했다”고 말했다. B씨는 반성문 여러 장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확인된 것만 1심에서 10차례, 2심에서 3차례다. A씨 아들은 “지금까지 B씨는 물론 그의 가족들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며 “B씨가 쓴 반성문은 자신의 형량을 줄이려는 방편일 뿐”이라고 했다.
◇”스토킹 처벌법 속히 시행돼 더 이상 피해 없기를”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스토킹 범죄 건수는 583건이다. 같은 기간 5468건이 신고된 것을 감안하면, 10% 정도만 처벌받는 셈이다. 그마저도 경범죄처벌법을 적용해 10만원 이하 벌금 등 처분에 그친 것이 대부분이다. 장난 전화와 비슷한 정도의 가벼운 범죄로 본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는 살인이나 성폭행 등 더욱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며 “피해자는 일상 생활이 어려울 만큼 정신적, 신체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스토킹 행위자를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예방과 피해자 보호 절차도 강화했다. 스토킹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서 즉시 응급조치를 하고, 경찰서장이 판사 승인을 받아 접근금지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A씨 아들은 “하루속히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돼 어머니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北, 열흘 연속으로 GPS 신호 교란… 무인기 대응 훈련하는 듯
- 59년 지나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말콤X 유족 1400억원 소송
- 사유리처럼... 20대 43% “결혼 안해도 아이는 낳을 수 있다”
- ‘아웅산 테러’ 마지막 생존자, 최재욱 전 환경부 장관 별세
- 법원 “택시조합 기사 실업급여 반환 처분은 과해”
- "엔저 효과" 올해 韓-日 항공편 이용객 역대 최다 기록
- “경매장 생선 회뜨기 금지 안된다“…공정위, 노량진시장 상우회에 경고
- ‘수렴청정’ 박단, 의협 비대위 합류하나... 15명 중 3명 전공의 채우기로
- 美 전기차·배터리 업계, 트럼프 전기차 보조금 폐지에 반대 성명...“미국 일자리 성장 해칠 것
- 음주운전 사고 후 도주, 운전자 바꿔치기까지 시도한 40대… ‘징역형 집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