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밖 심장, 4시간이 한계… 생명 살릴 질주 시작됐다”[히어로콘텐츠/환생]

히어로콘텐츠팀 2021. 2.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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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 삶을 나눈 사람들]
부산서 서울로 긴급 이송 상황… 항공-기차-병원까지 동선 계산
심장 담은 아이스박스 가지고 “빨리, 빨리” 100m 질주하듯 내달려
시한부 선고받았던 심부전증 환자, 새 심장 선물에 “고맙고… 죄송하다”
의료진이 손현승 씨의 심장이 담긴 푸른색 아이스박스를 들고 이식 대기자가 기다리는 A병원 입구로 달려가고 있다. 의료진은 적출된 심장이 버틸 수 있는 4시간 안에 심장을 이식하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숨 막히는 질주를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환생’은 동아일보가 지난해 창간 100주년을 맞아 출범시킨 히어로콘텐츠팀 2기의 결과물이다. 동아일보가 한 세기 동안 축적한 역량을 집약해 만드는 히어로콘텐츠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협업을 통해 이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장시간에 걸친 깊이 있는 취재, 참신한 그래픽, 동영상, 디지털 기술 구현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높이는 복합 콘텐츠를 지향한다. 지면 보도와 동시에 히어로콘텐츠 전용 사이트(original.donga.com)를 통해 기존에 경험할 수 없었던 디지털 플랫폼 특화 보도 형식을 선보인다.》
오후 4시 10분. 이제 떠날 시간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수술팀이 베드를 밀고 나오자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어머니는 불에 덴 듯 벌떡 일어났다. “안 된다, 안 된다!” 베드를 붙잡은 어머니는 필사적이었다. 아버지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잠시 뒤 현승이는 수술실 안으로 사라졌다.

사정없이 닫혀 가는 문. 그 앞에 망연히 서서야 깨달았다. 흉부외과 의사로 일한 지 15년. 폐 이식 수술만 100건이 넘었건만 한 번도 수술실 밖은 떠올리지 않았다는 걸. 그곳에 멈춰 있는 가족들은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의사일 때 나는 언제나 ‘적출한 폐가 손상되기 전에 1분 1초라도 빨리 움직여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술대 앞에 섰다. 하지만 수술대 위에 있던 그들 모두도 바로 문 밖엔 언제나 가족이 있었다. 울컥 가슴이 저려 왔다.

수술실 안에 있던 동료가 진행 상황을 메신저로 알려줬다.

“봉수야. 심장에 보존액 들어갔다. 6시 27분이다.”

심장 기증을 하려면 혈관을 닫고 심장을 멈추는 보존액을 넣어야 한다. 동생이 이 세상을 완전히 떠난 시간. 현승이의 심장은 이제 평생을 머물던 몸을 빠져나간다. 다른 이의 품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11월 10일, 부산에서 가족들이 손현승 씨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했던 날. 그날 저녁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코노스) 상황실에는 간호직 공무원 최정아, 이주미 주무관이 있었다. 그들은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며 전국 병원에 긴급 전화를 돌리느라 분주했다.

“부산대병원 39세 A형 남자 분, 신장 기증자가 발생해서요.”

“심장 매칭 리스트 곧 올릴 거거든요. 확인해주세요.”

보건복지부 소속인 코노스는 365일 24시간 당직 체제다. 전국 어느 병원에서든 뇌사 환자가 장기기증을 결정하면 즉시 이곳으로 보고된다. 코노스는 국내 모든 장기 이식 대기자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기증인과 장기 이식 대기자의 생체 정보를 대조해 수혜자를 결정한다. 총 4만3182명(2020년 말 기준) 중에서.

“일단 혈액형이 같아야 하고요. 그 외에도 백혈구 항원이 동일한지, 조직 검사 결과가 일치하는지, 대기 기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또 얼마나 위급한지 등을 따집니다. 질병관리청 시스템에 사람마다 대기 점수가 다 있어요. 결국 수혜자 순위는 점수를 기준으로 결정되죠.”(최 주무관)

현승 씨의 장기를 받을 최종 수혜자 결정은 꼬박 하룻밤이 지난 다음 날 아침 확정됐다. 심장 이식 대기자는 서울 A병원에, 신장 이식 대기자는 부산에 있었다.

이날 코노스에서 장기 이식이 가능하단 통보를 받은 A병원 의료진은 고심에 빠졌다. 서울과 부산 간 항공 스케줄과 기차시간표를 계속해서 들여다봤다.

“적출 수술은 이식 대기자 쪽 병원 의사들이 기증인이 있는 병원으로 가서 시행합니다. 이식 대상의 혈관 구조나 장기 사이즈 등에 맞춰 적출을 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이번엔 기증인이 부산에 있어 더욱 동선을 잘 짜야 했다. 심장은 몸 밖으로 나오면 4시간밖에 버티지 못한다.

앰뷸런스에 심장을 싣고 달리는 의료진. 부산=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
의료진은 항공편과 기차는 물론 역에서 병원까지 움직이는 시간도 계산했다. 수술 시간은 다음 날 오후 5시. 심장은 6시 반 정도면 적출된다. 심장이 살아있는 오후 10시 반 전에 병원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원래 항공편으로 왕복하려 했는데, 서울로 돌아왔을 때 퇴근시간대란 점이 걸려서요. 시내까지 차가 밀리면 안 되니까 갈 때는 비행기, 올 때는 고속열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병원과 역 사이는 앰뷸런스로 총알같이 달려야 했다.

A병원에 입원해 있던 심부전증 환자 채현수(가명) 씨. 그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심장이 자신에게 온다. 놀라움과 감사, 미안함과 불안이 뒤섞였다.

“너무너무 고맙지요. 말로 다할 수 없이 감사하고, 그리고 죄송합니다. 어떤 분인지는 몰라도 그분이 생명을 주신 거니까요….”

눈물 맺힌 채 힘겹게 말을 잇는 채 씨. 그의 환자복 사이로 심장에서 살을 뚫고 뻗어 나온 굵은 전깃줄이 눈에 띄었다. 벌써 6개월째, 이 줄은 채 씨의 몸과 박카스 상자만 한 검은 장치와 연결돼 있다.

“이 전선이 몸에 심은 인공 심장이랑 연결돼 있어요. 이 검정 박스는 배터리예요.”

현수 씨는 “올해 5월 ‘이대로는 길어야 1년밖에 못 산다’는 판정을 받고 인공 심장을 달았다”며 “3kg 정도라 엄청 무겁고 불편하지만 이게 몸에서 떨어지는 순간 난 죽는다”고 했다.

현승 씨의 수술 당일인 12일 오전, A병원의 흉부외과 의료진 3명은 현승 씨의 심장을 담을 푸른색 아이스박스를 들고 서울을 출발했다.

김포공항에서 김해공항을 거쳐 부산대병원에 도착한 A병원 수술팀은 신장을 적출하기 위해 온 다른 병원 의료진과 수술실에서 현승 씨를 맞을 준비를 했다.

오후 4시 20분. 현승 씨가 누운 침대가 수술실 안으로 들어왔다.

시작이었다.

A병원 흉부외과 의료진이 제일 먼저 수술대 앞에 섰다. 적출하는 장기는 순서가 있다. 몸에서 떼어졌을 때 손상이 빨리 되는 장기부터 비교적 오래 버틸 수 있는 장기 순. 통상 심장은 4시간, 폐는 6시간, 간은 12시간, 췌장은 14시간, 신장은 24시간을 버틴다.

기증인과 수혜자, 가족들 모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오후 6시 50분, 마침내 A병원 의료진이 아이스박스를 들고 수술실을 나와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이들은 마치 100m를 전력 질주하듯 병원 복도를 뛰어 앰뷸런스에 올라탔다.

부산대병원을 출발한 앰뷸런스는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부산역에 도착했다. 고속열차를 타고 부산역을 출발한 의료진은 오후 10시 6분 수서역에 닿았다. 또다시 전력 질주. 역 앞에서 기다리던 A병원 앰뷸런스는 의료진을 태우고 10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로비로 뛰어 들어간 의료진은 수술실로 향하는 모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1초라도 더 빨리…. 첫 번째로 도착한 엘리베이터로 달려간 의료진이 마침내 수술실로 빠르게 사라졌다. 현승 씨의 심장을 적출한 지 3시간 58분 만이었다.

다음 날 오전 3시. A병원은 5시간 반 만에 현승 씨의 심장을 현수 씨 가슴에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오전 7시 반, 현수 씨가 드디어 힘겹게 눈을 떴다. 부산에서 현승 씨 신장을 이식받은 환자들도 무사히 깨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승 씨와 세 사람이, 함께 환생(還生)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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