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경제수다방]탈토건 보수를 보고 싶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2021. 2.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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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국의 보수에 대해 사실 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오랫동안 힘과 권력을 다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유능해 보이지도 않았고, 적당히 부패해 보였다. 그리고 평균적으로는 책을 너무 안 읽었다. 가끔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처럼 정말 책 많이 읽고, 아는 것 많은 보수 인사들을 만나게 되면 경이감을 느끼는데, 그런 보수는 매우 드물다. 물론 내가 모든 보수 인사들을 다 아는 건 아니라서, 나도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경제정책으로만 국한해서 보면, 박근혜의 ‘줄푸세’ 이후 정형화된 보수의 경제 담론이 존재한다. 세금과 정부를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는 것, 이 정도라 이외에 뭘 더 분석할 게 별로 없어 보인다. 그 후로도 이걸 이렇게 변형하고 저렇게 변형한 게 거의 전부다, 트럼프 경제정책도 이렇게 단순하지 않았던 것 같다. 줄푸세가 보수 경제정책의 골간이라면, 나머지 지역 및 공간 정책은 대부분 토건이다. 다리 짓고, 도로 만들고, 그런 일본 경제의 아픈 모습이 한국 보수에게도 일종의 DNA가 된 것 같다.

물론 민주당이 늘 토건에 반대한 건 아니다. 뉴타운의 시작은 MB가 했지만, 국회에서 실제로 뉴타운법의 제정을 위해 움직인 건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에는 토건에 반대하지만, 여당이 되면 딱히 보수랑 크게 다르게 움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면적 뉴타운을 할 거냐, 부분적 도심 재생을 할 거냐, 이런 약간의 차이 정도를 제외하면 엄청나게 다르다고 보기도 어렵다. 선거 때 지역 공약을 비교하면, 저마다 다리 만들고, 도로 끌어오고, 지하철 놓겠다고 하는 게, 대체 누가 야당이고 누가 여당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다.

여전히 ‘디벨로퍼’의 전성시대
‘토건’ 더 세게, 더 빨리하는 여당
지금 한국의 보수는 야당이다
이제 변화의 가능성 보여줄 때

안철수가 처음 정치인으로 등장할 때, 나도 전혀 모르던 사람이라서 내심 기대를 가졌다. 그도 나름 ‘신상’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그도 크게 다를 게 없을 거라고 처음 생각한 것은 그가 새만금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MB도 선글라스 끼고 갔었고, 민주당 정치인들도 갔다. 안철수도 갔고, 다들 거기서 거기인 얘기들을 했다. 그날 기대를 접었다.

여든 야든, 현실 정치라는 이름으로 선거 때면 무슨 부동산 ‘디벨로퍼’처럼 여기에는 뭘 짓고, 여기에는 뭘 꾸미고, 여기는 싹 밀어서 새 출발하고, 그렇게 공약을 내거는 모습을 수십년 보았다. 공항이냐, 역세권이냐, 혹은 지하도로냐, 메뉴만 다르지 2020년대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디벨로퍼 전성시대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보수 정치에 대해서는 변화의 가능성을 본다. 그들이 야당이라서 그렇다.

김종인 비대위원회가 기본소득을 강령으로 채택할 때, 솔직히 놀랐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과감했다. 최근 보수 중에서 가장 과감했던 것은 원내대표 시절에 ‘중부담 중복지’를 테이블에 올렸던 유승민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정두언이 특목고 폐지를 외칠 때에도 신선했다. 한국 보수는 건설이 아니라 정비 및 보전,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시선을 주는 세력이 아니다.

환경운동의 원형 중인 하나인 시에라 클럽 같은 데는 매우 보수적이지만, 자연을 지키고, 동물을 보호하는 데에는 선구적이었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보수에는 꼭 한국 보수처럼 디벨로퍼를 자처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 이렇게 멀리 갈 것도 없다. 경제의 생태적 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가 지금 독일과 영국인데, 보수가 집권 중인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맨날 뭐 짓고 세우고, 그런 디벨로퍼 방식의 정책만 내세우면서 그들이 집권한 것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수도권만 남고 나머지는 붕괴할 것 같은 지역경제의 위기다. 민주당은 노무현 시대부터 익숙한 방식인 지방 개발 패러다임으로 돌아섰다. 여기가 언제 4대강을 반대했던 당인가 싶게 예비타당성 평가 같은 것은 해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토건으로 질주하는 중이다. 민주당 욕하기도 그렇다. “우리는 보수보다 더 세게, 더 빨리”, 요런 간단한 원칙 하나로 디벨로퍼 정당으로 순식간에 기조를 바꾸는 중이다. 그러면 보수는 그것보다 더 세고, 더 강력하게? 그러다 나라 망한다. 지역경제를 회생시킨다고 죽어라고 테마파크 만들고 공항 만들다 국민경제가 힘들어진 일본 사례를 우리가 늘 보지 않았던가?

미안하지만 지금 한국의 보수는 야당이다. 여당과 똑같이 토건 레이스로 붙어서는 집권세력을 쉽게 이기기 어렵다. 절대 과반수 의석으로 토건을 밀어붙일 줄은 지난 총선 때 아무도 몰랐겠지만, 이렇게 현실이 되지 않았는가? ‘건전한 보수’의 탈토건 논의를 보고 싶다. 국제 표준 보수가 토건파인 것은 아니다. 친환경 보수, 복지 보수, 기본소득 보수…. 이런 흐름이 어색하지 않은 것처럼 탈토건 보수도 익숙한 시대가 오기를 기대한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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