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묵묵]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말자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2021. 2.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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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 지면에 칼럼을 게재한 지 꼭 4년이 되었다. 2017년 1월, 대통령 탄핵으로 주말마다 수백만의 인파가 광화문에 집결하던 때였다. 다른 때였으면 원고 청탁을 거절했을 것이다. 때에 맞게, 좋은 글을, 규칙적으로 쓴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날 청탁을 수락했던 것은 목소리를 보태기 위해서였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던 함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함성 때문에 더욱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있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 그리고 장애인수용시설의 폐지를 요구하며 5년째 광화문 지하를 지키던 사람들.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서 결심했다. 이 지하 농성장의 볼륨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싸구려 앰프라도 되어야겠다고. 그해 가을, 농성은 마무리되었다. 정부가 이들의 요구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눈발이 날리던 토요일 아침, 4년 전의 그곳을 또 찾았다. 그때의 사람들이 그때의 요구를 들고 다시 농성장을 차렸기 때문이다. 새 농성장은 지상으로 이어진 통로 구석에 있었다. 예전보다 반층 정도 올라온 곳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한 달 전 서울 송파에 있는 장애인수용시설인 신아재활원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전체 181명 중 70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특별할 것도 없는 비극이다. 지난 1차 유행 때도, 2차 유행 때도, 3차 유행 때도 일어난 일이다. 집단수용시설이 전염에 취약하고, 장애인들의 경우 감염이 치명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시설을 그대로 두기 때문에 시설 감염도 그대로 일어난다. 최근 강화된 예방조치를 취하고는 있다고 한다. 외출·외박·면회의 절대 금지. 시설 수용으로 생겨난 문제를 시설 수용의 논리로 해결하려 한 것이다.

신아재활원 집단감염에 봉쇄
코호트 격리로 위험성 높아지자
긴급 탈시설 요구에 장애인 분산
진정되자 재입소, 서글픈 뒷걸음

신아재활원에는 ‘코호트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시설 전체를 봉쇄한 것이다. 감염에 치명적 손상을 입는 장애인들을 바이러스가 확산된 공간에 가두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번 농성은 신아재활원에 대한 ‘코호트 격리 중단’과 ‘긴급 탈시설’에 대한 요구로 시작되었다. ‘긴급 탈시설’이란 재난상황이나 인권침해가 우려되는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즉각적으로 탈시설 조치를 취하고 탈시설 장애인들에게 인적·물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서울시가 이 요구를 수용하면서 수용자들에 대한 분산 조치가 이루어졌고 비확진자들에게는 임시주거지가 제공되었다. 서울시는 이들에 대한 탈시설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렇게 한 걸음 나아간 건가 싶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시설 체제는 그렇게 허약하지 않았다. 장애인들을 시설에 집단으로 수용해온 논리와 이유, 이해관계가 재난이 닥쳤다고 그냥 사라질 리가 없다. 시설 관계자들이 탈시설화에 반대하고 당국이 머뭇거리는 사이 서글픈 뒷걸음질이 나타났다. 분산 조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재입소가 진행되더니, 11명의 치료자를 포함해서 69명이 시설로 돌아와 버렸다.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긴급조치 후 다시 재난을 유발한 조건으로 돌아간다는 것, 이 뒷걸음질은 너무나 상징적이다. 긴급 탈시설이 탈시설로 이어지는 다리가 아니라 재난상황에서도 시설을 유지할 수 있는 방편이 되게 생겼다. 광화문 지하에 농성장이 차려진 것은 이 뒷걸음질을 막기 위해서다. 방어 전선의 참호들처럼 작은 텐트들이 늘어서 있고, 농성자들의 피켓에는 똑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돌아갈 수 없다!’ 시설로 돌아갈 수 없고, 1842일 싸웠던 4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탈시설 운동이 본격화된 지난 10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지상을 향해 겨우 반층 올라왔는데 다시 바닥으로 내려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어에서 긴급사태를 의미하는 ‘emergency’는 ‘emerge’에서 온 단어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물에 잠겨 가라앉다’는 뜻의 라틴어 ‘merge’의 반대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긴급사태란 가라앉은 상태에서 뭔가가 튀어 올라온 상황이다. 작가 레베카 솔닛의 말처럼 이런 반전의 상황이 꼭 불행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재난이란 이전 사회의 파열이고 우리의 대처에 따라 그 틈은 미래로 열린 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가라앉을 것인가. 확실한 것은 재난 이전은 재난을 낳은 곳이지 재난을 극복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설로 돌아가지 말자.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지 말자. 우리는 다른 사회를 원한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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