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칼럼] 김구 선생이 벌떡 일어날 일이다

남상훈 2021. 1. 3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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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나의 소원'서 문화의 힘 강조
지금도 선생의 혜안 새삼 놀라워
문화하고 거리 먼 인사 장관 임명
문화예술이 권력에 짓밟힌 느낌

집콕시대,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영화가 ‘미드나이트 인 파리’라고 한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을 못 하니 대리만족에 딱 맞다. 몽마르트르 언덕도 나오고 미라보 다리도 나온다.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다. 다른 말로 재미없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지구촌에서 끊이지 않고 방영되는 이유는 또 있다. 파리에 대한 동경심, 나아가 프랑스 문화에 대한 막연한 호감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프랑스 하면 문화, 문화강국으로 인식해 왔다.

실제로 우디 앨런 감독은 파리를 사랑했던 예술가들에 대한 ‘오마주’(존경의 표시)라고 제작동기를 말했다. 평생 뉴욕이 최고라고 주장했던 앨런의 놀라운 변신이라는 게 뉴욕타임스의 평이다. 영화에는 수많은 문인과 화가 등 동시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세계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으면 영화는 좀 지루하다. 주인공들의 서사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예술적인 성취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공부하고 보면 볼 만하다. 피츠 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살바도르 달리, 미국의 여류 시인 거트루드 스타인 등등이 주요 인물로 나온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삶에 환멸을 느낀 청년들에게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이름을 붙였던 장본인이다. 막상 다 보고 나면 갑자기 교양있는 문화인이 된 느낌이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매체경영
그러나 프랑스가 예전부터 이 같은 이미지를 가진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나 영국, 독일에 비해 뭐 하나 우위를 차지하기 어려운 나라였다. 로마가 뒤에 버티고 있는 이탈리아와는 애당초 비교가 안 되고, 이른바 대영제국을 상대하기도 버겁다.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파워에 대해서는 엄청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프랑스가 일류국가로 발돋움한 것은 문화의 힘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앙드레 말로가 있다. “오랫동안 꿈꾼 자, 마침내 그 꿈의 주인공이 된다.” 고딩 시절 책상 앞에 붙여 놓았던 구절이다. 말로의 말씀이다. 나는 입시에서 오는 중압감을 이 구절로 달래곤 했다. 그러면서 이 행동주의자의 삶에 대해 궁금증을 더해 갔다. 대학 입학해 처음으로 읽은 책이 ‘인간의 조건’이다. 지금 읽어봐도 그의 투사적인 삶처럼 문체가 아주 다이내믹하다. 그러나 내가 진정 말로에 매력을 느낀 것은 문화행정가로서의 그의 모습이다. 드골의 신임 아래 10여년간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 재임한 그는 오늘날 문화강국의 프랑스의 초석을 놓았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프랑스=문화강국’이라는 프레임을 큰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에겐 김구 선생이 있다. 기성세대는 교과서에 등장한 선생의 ‘나의 소원’이란 글을 밑줄 좍 긋고 배웠다. 국어 선생님은 통째로 외우게 했다. 못 외우면 그대로 귀싸대기를 올렸다. 공부도 공부이지만 백범에 존경심도 한몫했다고 봐야 한다. 덕분에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나라 힘이 없어 주권을 강탈당한 그 시절에 어떻게 이같이 문화의 힘을 역설할 수 있을까? 선생의 혜안에 새삼 놀라게 된다. 그러면서 선생은 인류가 머지않아 우리 문화를 사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K팝과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지금, 선생의 통찰력에 더더욱 고개가 숙어진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최근 개각에서 문화하고는 거리가 먼 현직 국회의원이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문화예술인들은 이구동성, 자존감을 깡그리 무시하는 황당인사라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나는 부엉이 모임 등 정치 공학적인 배경은 모른다. 그러나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문화예술 행정의 수장을 정치권에 나눠 먹는 한 자리쯤으로 생각하는 문재인 정권의 비문화적인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이른바 K로 시작되는 눈부신 문화예술이 권력에 짓밟힌 느낌이다. 지하에 계신 김구 선생이 벌떡 일어날 이번 인사를 우리는 절망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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