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7조 재난지원금, 5조는 피해 상관없이 나눠줬다
“바로 옆 OO군은 재난지원금을 줍니다. 세금을 더 내면 더 냈지 덜 내지 않는데 우리 시는 왜 안 주나요?”
한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의 ‘시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는 작년 말부터 이런 글들이 올라왔다. “재정 상황이 어렵다”는 이유로 지난해 지자체가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은 결국 올 초 모든 시민에게 10만원씩 주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체육시설, 학원 등에 맞춤형 재난 지원금을 지급한 전남 여수시에서는 “모든 시민에게 재난 지원금을 달라”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민단체들은 “시민은 고통인데 시장은 불통”이라고 공격했다. 견디다 못한 시장은 지난 25일 1인당 25만원씩 현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올해 지자체가 주는 재난지원금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다. 여수시장은 나라 살림을 책임지던 기획재정부 재정정책국장 출신이다.
31일 국회 정무위원회 윤창현 의원이 행정안전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1월 국내 코로나 발생 이후 지자체들이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7조384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 업종 등을 대상으로 한 선별 지원은 28%(2조928억원)에 불과하다. 5조2913억원이 보편 지원 방식으로 지급됐다. 17개 광역 지자체의 경우 강원도를 제외한 16곳에서 4조7149억원을 지급했다. 기초 지자체(시·군·구) 226곳 중에는 150곳이 2조6692억원을 썼다.
“정부 지원이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메워달라”는 중앙정부 방침과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인근 지자체와 비교하면서 “지원금 달라”고 하는 요구가 큰 데다, 선거를 의식한 단체장들이 인기몰이에 도움이 되는 ‘현금 지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정부는 세 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1차 때는 전 가구에 최대 100만원씩 주는 보편 지원 방식이었다. 하지만 2차와 3차는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 등을 지원하는 ‘선별’ 방식이었다. 코로나 피해가 특정 계층에 집중된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자체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지난달 13일까지 지급한 재난지원금 7조3841억원 가운데 70% 이상을 보편 방식으로 지급했다. 전 주민에게 현금을 주거나 소득 기준(예컨대 중위소득 100% 이하)을 적용해 지원금을 지급했다. 막대한 재원 마련을 위해 재난 상황을 대비해 지자체들이 쌓아둔 재난관리기금을 동원하면서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재난관리기금 잔액은 지난 2019년 말 3조2144억원에서 작년 11월 말 1조5382억원으로 급감했다.
◇기초 지자체가 보편 지원 더 심해
특히 광역 지자체보다 기초 지자체들이 보편 지원 방식을 채택한 경우가 더 많았다. 전국 광역 지자체 가운데 강원도를 제외한 16곳이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는데 금액을 기준으로 보편 지원이 65.2%였다. 기초 지자체는 이보다 훨씬 높았다. 지원금을 나눠준 전국의 시·군·구 150곳의 경우 보편 지원이 83.1%에 달했다. 선별 지원은 16.9%에 그쳤다. 예컨대 부산시의 구와 군 16곳은 단 한 곳도 예외 없이 주민 전원에게 5만~10만원씩 나눠주는 보편 방식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인근 지자체가 10만원씩 나눠주면 인근 지자체가 더 높여서 지급하는 식으로 지자체 간 ‘재난 지원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창현 의원은 “지자체들의 재난지원금 지급이 코로나 피해 상황 등과 무관하게 인기몰이 정책으로 변질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1차 재난지원금의 효과를 분석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재난지원금으로 100만원을 주면 26만~36만원만 소비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보편 지원은 소비 진작을 통해 자영업자를 돕는다는 명분을 내걸었는데 실제로는 그런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8일 “(재난지원금은) 피해가 큰 부문에 선택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지자체 따라 지원금 차이...경기도가 전체 지원금 40%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다음 달 1일부터 전체 도민에게 10만원씩 추가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재원 부담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는 “기득권자와 일부 보수 경제언론들이 얼마나 세뇌를 시켜놨는지 세금이나 빚 걱정을 한다”면서 “과감한 확장재정정책으로 충분한 재원을 확보해 보편, 선별, 보상 등 필요한 모든 정책을 모두 시행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경기도(기초 지자체 포함)는 2조9637억원을 썼다. 전체 지자체 재난지원금의 40% 수준이다.
경기도는 그나마 재정에 여유가 있다. 그러나 훨씬 살림이 어려운 일부 지자체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모든 주민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데 동참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왜 우리만 안 주냐'고 주민들이 따지면 선출직 단체장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면서 “자칫 (재정 여력이 있는) 경기도 같은 ‘황새’ 따라 하려는 ‘뱁새’가 늘어날까 걱정”이라고 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지역마다 재정 여력 등이 달라 코로나 피해에 맞게끔 형평성 있게 지원하기 어렵다”면서 “중앙정부가 (코로나 피해) 지원할 때 지자체가 지급한 금액을 감안하는 방안 등도 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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