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 초자고·큐큐..외계어 아닌 현장용어죠"
이연우·박현주 시각예술작가
골목 누벼 사장님들 취재해
인쇄·포장 단어 150개 수집
"레트로, 옛것을 해석하는 것
너무 빨리 변해가는 시대에
사라질 단어들 즐기듯 모아"
이런 질문을 듣고 바로 대답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어리둥절한 단어는 또 있다. '나나인찌' '큐큐' '장끼' '랍빠' '그라비아 인쇄'….
오타가 아니다. 서울 을지로 방산시장 간판엔 이런 용어가 즐비하다. 시각예술 분야 이연우 작가(사진 왼쪽)와 박현주 작가는 방산시장에서 사라져 가는 전문용어 150개를 최근 책 한 권에 담아냈다. 제목은 '방산어사전'이다. 두 작가를 최근 이메일로 만났다. 이 작가는 "레트로한 글씨가 가득한 간판이 눈을 사로잡았다"고 했다.
"방산시장을 한 달쯤 돌아다니는데 만화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말들이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사장님들께 여쭤보고 독학하며 취재했어요. 책에 간판 사진도 함께 수록했고요."
먼저, '나나인찌'는 뭘까. 미싱 부속품의 한 종류인 나나인찌는 단춧구멍 올이 풀리지 않게 마감질해주는 장치를 뜻한단다. '큐큐'는 그 단춧구멍을 만드는 기계를 의미한다. 또 방산시장에서 '장끼'는 매장에서 직접 작성해주는 영수증을 뜻한다. 죄다 외계어로 보이지만 삶의 현장에서 여전히 쓰이는 엄연한 현장 용어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두꺼비 초자고'는 뭘까. 박 작가는 "그 단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웃었다.
"처음엔 '초자고란 물건이 두꺼비처럼 생긴 건가'라고 생각했어요. 알고 보니 초자고는 원단에 사용하는 '초크(chalk)'의 은어, 두꺼비는 브랜드 이름이었어요. 뜻을 아니까 너무 막 허탈한 거예요(웃음). 같은 시공간을 살면서도 아예 모르는 세상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쇄와 포장의 메카 방산시장에서 이들 단어는 산업화 시대에 기름 냄새 진동하는 공장 골목에서 수십 년째 구전되면서도 기어이 살아남은 전문 용어다. 구슬땀이 맺힌 골목을 누비는 취재가 어렵진 않았을까. 박 작가는 취재 과정에서 융통성을 특히 고려했단다.
"가게 사장님 상황을 중요시했어요.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요. 문 앞을 서성거리다 TV 보고 계신 타이밍에 맞춰 들어가는 거죠. 한참 얘기하다 새 손님이 오시면 먼저 '여기 잘하는 집'이라고 어필하는 센스도 발휘했어요(웃음)."
이 작가는 특히 두 사장을 기억했다.
"양훈진 성진데칼 사장님, 김선덕 국제철형 사장님께 정말 감사해요. 특히 김 사장님은 지방에서 올라와 방산시장에 처음 자리 잡던 스토리까지 맛깔나게 들려주셨어요. 단어 뜻보다도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이 더 컸어요."
'불황일 때는 미래 대신 과거를 이야기한다'는 속설을 증명하듯 아날로그와 빈티지 등 '레트로(Retro·복고주의)'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 레트로풍의 방산어사전을 두고 박 작가는 옛것 자체보다는 옛것의 '해석'에 집중해달라고 했다.
"너무 빨리 변하는 시대잖아요. 더 이상 새로운 게 나오기 힘들 정도로요. 레트로란 옛스러운 것들의 유행이 아니라 옛것을 레퍼런스 삼아 젊은 세대가 해석해가는 방식이 아닌가 싶어요. 방산어사전도 지난 세대의 용어를 젊은 세대가 해석하는 방식 때문에 주목해주시는 것 같아요."
이 작가는 사진을 전공해 시각예술 작가이자 출판·콘텐츠·문화 기획자로 활동 중이고, 박 작가는 동양화와 판화를 전공해 시각 작업과 디자인에 집중하고 있다. 두 작가는 지역의 개성을 담는 작업을 올해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사전이란 단어가 담은 진지한 깊이보다는 가볍게 즐기는 마음으로 제작했어요. 우리가 재밌어서 만든 것을 좋아해 주실 때 정말 기분이 좋아요. '놀려면 알고 제대로 놀자!'가 우리 목표예요. 먼저 방산어사전을 통해 즐겨주시길 바랄게요."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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