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로 '소멸위기 고향 살리기', 이번엔 될까

이호준 기자 2021. 1. 31. 21: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갯속 '고향사랑 기부제'

[경향신문]

소멸 위기에 처한 고향에 기부로 재정지원을 할 수 있는 ‘고향사랑 기부제’가 이번에는 법제화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향사랑 기부제’는 인구 감소 등으로 재정난을 겪거나, 일시적인 재해로 어려움을 겪는 고향에 개인이 기부를 하고 금액의 일부 또는 전액을 세액공제 형태로 돌려받는 제도다. 2007년부터 정치권에서 본격 논의가 시작됐지만, 여야가 “취지에 동의”한다면서도 “각론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매번 국회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지방 분권에 적극적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100대 국정과제’에 ‘고향사랑 기부제’가 포함됐고, 지난 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법 통과 가능성이 과거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무려 15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가 폐기된 점을 상기하면 이번에는 또 어떤 돌출변수가 법 통과의 발목을 잡을지 여전히 안갯속이다.

■ 소멸 위험지역 92.4%가 ‘비수도권’

인구감소로 재정난 등 겪는 곳에
개인 기부, 세액공제 받는 제도
정부, 지방분산·분권 안간힘에도
소멸위험 10곳 중 9곳 ‘비수도권’
재정자립도 낮아 인구유출 악순환

31일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5월 기준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처한 시·군·구는 100곳을 넘어섰다.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105곳이 인구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됐고, 소멸 위기에 처한 시·군·구는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소멸 위험’으로 분류하는 지자체는 가임기 여성 인구수를 노인 인구수로 나눈 ‘소멸위험지수’를 통해 산출한다. 지수가 0.5 미만이면 인구소멸 위험지역, 0.2 미만이면 인구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는데, 인구소멸 위험지역은 2014년 79곳에서 2016년 84곳, 2018년 89곳으로 늘다가 지난해 100곳을 넘겼다.

총 105곳의 인구소멸 위험지역 중 92.4%인 97곳이 비수도권 지역이다. 위험지역으로 분류된 시·군·구의 소멸은 ‘시골’ ‘고향’ ‘농촌’의 소멸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비수도권 지방 지역의 경우 출산율이 저조한 가운데 젊은층이 대도시로 대거 이동하면서 인구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특히 인구소멸위험지수가 0.2 미만인 고위험 지역이 23곳에 달했는데 대부분 농어촌 군 지역에 속했다. 경북 군위군의 경우 인구소멸위험지수가 0.133으로 가장 높았고, 경북 의성군(0.135), 전남 고흥군(0.136), 경남 합천군(0.148), 경북 청송군(0.155), 경남 남해군(0.156)이 뒤를 이었다. 그 외 충북 보은·괴산군과 충남 부여·서천·청양군, 전북 임실군, 전남 곡성·보성·함평·신안군, 경북 영양·영덕·청도·봉화군, 경남 의령·하동·산청군 등이 ‘고위험’ 지역에 포함됐다.

■ 인구 유출→재정난→추가 유출 악순환

지방 인구 유출의 주된 원인은 ‘질 좋은 일자리’와 정착해 살고 싶은 ‘정주 여건’의 부족으로 요약된다. 정부가 혁신도시를 비롯해 지방 분산·분권 정책에 힘을 쏟고 있지만, 직접적인 민간 일자리 확대로 연계되는 데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지방 인구가 줄어들면서 해당 지역의 세수가 줄고, 재정난이 심해지면 지역의 살림살이가 더 나빠지면서 인구 유출을 부추기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기 쉽다. 실제 최근 대도시와 지방 간 재정격차를 살펴보면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행정안전통계연보를 보면 특별시와 광역시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도는 60.9%에 달한다. 반면 도·특별자치도의 재정자립도는 39.4%에 불과했고,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시의 재정자립도는 33.5%, 군의 자립도는 17.3%에 불과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81.4%의 재정자립도로 1위를 기록한 가운데 부산(54.8%), 대구(50.5%), 인천(59.8%), 경기(64.8%), 세종(64.8%)은 50%가 넘는 재정자립도를 보였다. 반면 전남(28.1%), 전북(30.1%), 강원(28.1%) 등은 모두 30% 언저리의 낮은 재정자립도를 보였다.

실제 재정자립도가 낮은 시·군·구일수록 인구소멸 위험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뚜렷하게 확인되는데,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일이 농촌 시·군·구의 소멸을 늦추거나 막을 수 있는 직접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는 통계로도 읽힌다.

먼저 인구절벽을 경험한 일본도 ‘대도시 집중’ ‘지자체 세수부족’ 등 유사한 위기를 겪었다. 역시 마찬가지로 중앙정부 차원의 별도 지원이나 새로운 세원 발굴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일본은 ‘고향납세’라는 새로운 형식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고향납세’는 지방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고향에서 의료나 교육 혜택을 받고 자라났지만,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도시에 이주·정착한 뒤 도시에 세금을 내는 문제를 해소해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2008년 지방세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고향납세’는 나고 자란 고향 등 지역을 정해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기부금을 납부하되, 기부자가 기부한 금액 일부를 주민세나 소득세로 공제받는 형식이다. 여기에 다양한 지역특산물을 기부 답례품으로 받으면서 지역에도 새로운 수입원이 됐다.

시행 초기 실적은 미미했지만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영향으로 기부가 증가하기 시작하더니, 2015년 세제 혜택이 확대된 후 실적이 폭증했다. 2008년 81억엔(864억원)이었던 고향납세액은 2019년에는 4875억엔(약 5조2000억원)으로 2008년 대비 60배나 증가했다. 이기흥 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우리보다 앞서 지방소멸 문제에 직면한 일본의 경우 고향납세 제도 활성화로 지역 재생에 큰 효과를 봤다”면서 “한국은 세제 혜택이 현재 여야의 안보다 훨씬 더 큰 ‘고향사랑 기부제’ 도입이 매우 시급하다”고 말했다.

■ 고향사랑 기부제 마지막 고비

14년간 정치권 논의 번번이 좌절
21대 국회 ‘기부제’ 입법 경쟁 속
기부방식·공제액 등 ‘줄다리기’

국내에서도 지난 20대 국회에서 여야 통틀어 총 15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등 제도 도입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백가쟁명식 발의가 오히려 발목을 잡으며 성과 없이 폐기 수순을 밟는 실패를 맛봐야 했다.

21대 국회의 시작과 더불어 여야는 다시 고향사랑 기부제에 대한 입법경쟁에 나선 상태다. 여전히 ‘취지에는 동의’ ‘각론에 이견’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여야에서 큰 이견 없이 정리된 골자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개인’이, 도시가 아닌 ‘지방’에 기부를 하면 일정 금액을 세액공제해 주는 방식이다. 기부금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되고, 1000만원까지는 16.5%, 1000만원 초과 금액은 33%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기부를 받은 지방자치단체는 감사의 의미로 지역 특산 농축수산물을 이용한 답례품을 제공할 수 있는데, 세액공제 규모와 기부금 모금 형식, 답례품 제공의 규모와 주체 등을 놓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법안 통과를 막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제도 도입이 불러올지 모를 부작용에 대한 우려다. ‘기존 기부 총량을 위축시키지 않을지’ ‘도시에 대한 역차별은 없는지’ ‘기부 촉진을 위해 위법·불법 행위가 만연하지 않을지’ ‘지자체가 혹시 기업을 압박하지 않을지’ 등이다. ‘개인이 아닌 기업은 기부할 수 없다’는 원칙처럼 일부는 명확히 정리됐지만, 일부는 여전히 자구와 해석을 두고 여야가 계속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정치권의 이 같은 공방에도 불구하고 고향사랑 기부제도 도입에 대한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야당의 비협조가 걸림돌이 되기 어려운 정치적 지형에다, 야당 역시 지방소멸의 급박성을 외면하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전망하는 기대가 큰 배경이다. 지역 농업협동조합 관계자는 “도농 재정격차 해소를 위한 고향사랑 기부금 제도 도입의 시급성이 더해가고 있지만 정치권이 아직도 손익계산서나 따지면서 늑장을 부리고 있다”면서 “지방과 농촌이 다 소멸되고 나서도 해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대답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