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외손주들 봐주러 왔다..할머니 등 3명 화마에 '참변'
필리핀 국적 엄마도 중상
[경향신문]
31일 새벽 강원 원주시의 재개발지역에서 불이 나 다문화가정의 70대 할머니와 외손주 2명 등 3명이 숨졌다.
숨진 자녀의 30대 엄마와 앞집에 거주하던 60대 남성 등 2명도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날 오전 3시5분쯤 원주시 명륜동의 재개발지역 내 한 주택에서 불이 났다고 밝혔다. 이후 불이 인근 주택으로 번지면서 이 집 안방에 있던 필리핀 국적의 A씨(73)와 초등학교 1학년인 9세 외손녀, 오는 3월 입학 예정이던 7세 외손자 등 3명이 숨졌다. 이들은 화재 당시 안방에 모여 잠을 자다가 변을 당했다.
함께 잠을 자던 아이들의 엄마 B씨(32·필리핀 출신)는 얼굴과 손 등에 1도 화상을 입고, 연기를 흡입해 호흡곤란에 빠진 상태로 창문가에 매달려 있다가 이웃 주민들에게 가까스로 구조됐다. 주민들은 B씨를 집 밖으로 끌어낸 뒤 다른 가족을 구조하려 했으나 갑자기 주택 전체가 화염에 휩싸여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숨진 A씨는 지난해 딸 B씨의 초청으로 입국해 외손주들을 돌봐왔다. 플라스틱 공장에 다니던 B씨는 코로나19 사태로 일감이 줄어들면서 3~4개월 전 실직해 실업급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2월12일 출국해 중국에서 용접 관련 일을 하고 있는 B씨의 남편은 사고 소식을 전해듣고 귀국을 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 주민들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자녀들을 잘 키워보기 위해 애쓰던 가정이었는데 참사가 발생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른 주택에 거주하던 C씨(65)도 얼굴과 다리 등에 2도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있다.
C씨는 경찰에서 “집에서 석유난로를 사용하고 있는데 자다 일어나보니 불길이 치솟고 있어 밖으로 뛰쳐나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화재로 재개발지역 내 주택 2채가 전소되고 2채는 절반가량 탔다. 불은 1시간20여분 만에 진화됐다.
화재가 발생한 곳은 재개발을 앞둬 오는 9월 철거 예정이던 지역이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주택 20여채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소방차 진입도 불가능했다. 소방대원들은 지상 소화전 등에 호수를 연결해 진화작업을 벌이느라 진땀을 흘렸다. 경찰은 석유난로 취급 부주의로 불이 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자녀를 잃은 B씨가 충격에 빠져 피해 조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발화 지점과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 감식작업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승현 기자 cshdmz@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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