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km까지 예방적 살처분하라니..텅 빈 양계장 보면 억장 무너져"
[경향신문]
살처분 범위 6배로 늘리자
음성 전체 가금류 27% 매몰
지자체 보상비 부담도 증가
“무리한 방역대 기준 불합리”
31일 경기 안성시 일죽면 장암마을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마을 끝자락에 흐르는 개울을 따라 서너 곳 있는 산란계(알 낳는 닭) 농장에는 인적을 찾기 어려웠다. 산란계 2만마리가 살처분된 A농장은 출입 제한선으로 주변을 막아 놓았고, 진입로에는 차량과 사람 출입을 금지하는 바리케이드형 푯말이 있었다. 농장주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억장이 무너진다. 며칠 전 내 농장과 형님 농장 닭까지 모두 살처분했다”고 말했다. 그는 “방역당국이 조류인플루엔자(AI) 항원 검출지 반경 3㎞ 이내 농가에도 예방적 살처분을 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AI가 발생한 농장 주변에 있는 농장들까지 쑥대밭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농장에서 직선거리로 400여m 떨어진 B농장의 축사도 텅 비어 있었다. 농장 인근 공터에는 산란계 사체를 ‘랜더링’(살처분한 가금류를 고온으로 살균·처리해 바이러스를 사멸하는 것) 방식으로 처리한 매몰지가 있었다.
지난 29일 고병원성 AI 항체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C농장 주인 우모씨는 산란계 22만마리를 살처분했다. 2016년 10만마리를 살처분한 데 이어 두 번째다. 그는 “올해는 조용히 지나가나 싶었는데 착잡하다”며 “그간 위생복을 입고 작업을 하며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켰는데도 AI가 또 발생했다”고 말했다. 현재 경기도에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위험주의보’가 발령됐다.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10일까지다.
지난해 11월26일 전북 정읍 오리농장을 시작으로 AI가 전국 가금류 농장으로 확산되면서 농가들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AI 유행으로 2000만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 등 가금류가 살처분됐다. 최악의 피해를 기록한 2016년보다는 적지만, 역대 두번째였던 2018년 살처분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농가들은 AI의 확산도 문제지만 2018년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발생 농가 반경 500m에서 3㎞로 늘린 방역지침도 농가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충북 음성군 금왕읍에서 양계농장을 운영하는 임모씨(63)는 한 달이 넘도록 닭을 키우지 못했다. 8동이나 되는 양계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언제 병아리를 받을지 몰라 매일 찾아와 양계장을 둘러본다”고 말했다. 임씨는 지난달 8일 그의 양계장에서 1.5㎞ 정도 떨어진 메추리 농장이 AI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12만1000마리의 닭을 살처분해야 했다. 그는 “2018년 이전이면 이동 제한으로 끝났을 텐데 예방적 살처분 범위가 확대되면서 살처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그 이후 주변에서 AI가 잇따르면서 지금까지 닭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음성지역은 충북에서 유일하게 AI가 발생한 곳이다. 이 지역에서 5개의 가금류 농가가 AI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살처분 대상 농가는 26곳이나 된다. 살처분 규모도 239만마리다. 음성의 전체 가금류 사육 마릿수(867만5000마리)의 27%에 해당한다. 피해가 큰 이유는 방역대 확대로 예방적 살처분 대상 농가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예방적 살처분은 지자체들의 재정적 부담도 키우고 있다. 음성군이 추산하는 살처분 농가 보상비용은 180억원 정도다.
박열희 음성양계협회 회장(63)은 “확대된 방역대 기준을 모든 농장에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본다”며 “현재 확산 상황을 보면 조류독감은 이웃 농장 간 전염이 되는 수평 전파의 가능성이 낮은데 왜 무리하게 살처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AI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집계를 보면 지난해 11월26일 첫 확진 판정 이후 지난 1월28일까지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을 받은 농장·농원은 모두 75곳이다. 살처분된 가금류는 모두 2319만마리에 달한다.
이삭·최인진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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