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실체 없는 '북 원전' 공세, 책임있는 야당 자세 아니다
[경향신문]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삭제한 530건의 월성 원전 1호기 파일 속에 ‘북한 원전 건설’이나 ‘남북 에너지 협력’이 등장하는 10여개 문건이 나오면서 정치 공방이 불붙고 있다. 국민의힘은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 원전을 지어주겠다고 뒷거래한 정황이라고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했다. ‘이적행위’ ‘반역죄’ ‘원전게이트’라는 극단적 표현도 총동원했다. 청와대와 산업부·통일부는 “사실 무근”이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실체적·객관적 진상은 어느 것 하나 드러난 것 없이 보수 야당·언론이 이념·안보 공세부터 시작한 모양새가 됐다.
국민의힘에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앞장섰다. 김 위원장은 검찰 공소장이 공개된 지난 29일 “이적행위 국기문란 프로젝트가 일부 공무원이 아닌 정권 차원에서 극비리에 추진돼온 여러 정황이 드러났다”고 했고, 31일 당내 진상규명특위를 출범시켰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북풍을 넘어서는 반역죄”라고 했고,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나경원·오세훈 전 의원도 정부 공격에 가세했다. 그 과정에서 보수언론의 의혹 제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악습도 재연됐다. 조선일보가 ‘판문점 도보다리’ 회담 때 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원전 건설 내용이 담긴 USB를 전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국민의힘은 기정사실화하고 특검·국정조사를 하자고 나섰다.
정부는 2018년 남북 정상 간 대화나 정부 간 협의에서 원전 건설 얘기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문 대통령이 USB로 건넨 ‘한반도 신경제구상’에도 이미 공개한 대로 수력발전소 현대화, 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신재생에너지 확대 방안이 담겼다고 했다. 보수야당의 문제제기가 사실과 동떨어졌다고 한 것이다. 검찰 수사나 객관적 자료가 제시되면 곧 판별될 사안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북한 원전 건설 얘기는 새삼스러운 내용이 아니다. 북 비핵화를 전제로 한 경수로 건설 사업은 1차 북핵 위기 이후 1994년 10월 발표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포함됐으며, 2000년대 초·중반 남북과 미·중·러·일이 참여했던 6자회담에서 논의됐다. 산업부가 북 원전 지원 파일에 대해 “아이디어 차원의 내부 자료”라고 했듯이 이명박 정부 때부터 비핵화 후 남북경협 카드로 거론했던 사안이다.
북 원전 건설 문제는 주변국에서도 예의주시할 결코 가볍지 않은 얘기다. 자칫 불안한 한반도 정세에 돌출변수가 되거나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4월 보궐선거 길목에서 자극적인 이념 공방만 벌일 게 아니라는 뜻이다. 국민의힘은 안보 문제에서 책임있는 공당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으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재생산해선 안 된다. 정부도 시민들의 판단을 도울 수 있는 자료로 실체를 알려 소모적인 정쟁을 조기에 끝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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