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공급 부족 논란이 놓친 3가지 진실

진명선 2021. 1. 3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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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부동산대책]2018년 이전에 누적된 공급 부족
30대 맞벌이 부부라는 초과 수요
보금자리주택 100만호 공급됐다면

“5년 내 공공분양 주택을 30만호 건설하면 서울 주택난은 해결될 것이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부동산 햇볕정책으로 양질의 주택 65만호를 5년간 공급하겠다.” (조은희 서초구청장)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을 중심으로 서울에 수십만채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 쏟아지고 있다. 2월 초 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놓을 첫번째 부동산 대책에서도 공급물량이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8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시장이 예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물량을 공급함으로써 공급부족에 대한 불안을 일거에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주택 가격 급등의 원인으로 다주택자·외지인·법인·갭투자 등 ‘투기 수요’를 지목하던 과거와 달리 ‘공급 부족’이 원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보유세·양도세 강화 및 대출 규제 등으로 부동산 시장이 실수요 중심으로 재편된 만큼 내집 마련을 원하는 무주택 실수요자를 위한 주택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물량공세’로 부동산 시장 안정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양적 공급’보다 ‘질적 공급’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① 공급 부족, 절반의 진실

 ‘공급이 부족해서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는 진단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국토교통부의 2005~2020년(2020년은 11월까지 누계) 주택 준공 실적을 보면, 이 시기 서울 아파트는 연평균 3만6434호가 공급되었는데 아파트 가격이 급등한 2018~2020년 공급물량은 연평균 4만6637호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과거보다 연평균 1만호씩 추가로 공급되었는데도 훨씬 더 적은 물량이 공급된 이전 시기보다 가격이 오른 것이다.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였던 2012~2014년의 경우 아파트 공급 물량은 연평균 3만3016호에 불과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2012년 1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5억4천만원이었는데 2014년 1월 4억9천만원까지 떨어졌다.

평년보다 많은 공급이 이뤄졌는데도 아파트 가격은 왜 뛰었을까. 일시적인 공급 확대로는 주택 경기가 침체된 시기 누적된 공급 부족을 회복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파트 수요를 전체 주택 수요의 74% 정도로 보는데, 서울 연간 주택 수요 5만5천호 중 4만1천호 정도를 아파트 수요로 보면 2018년 이전에 누적된 공급 부족 물량이 상당하다”며 “가격 급등 시기에는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 때문에 수요가 더 자극되는데다 서울에는 외지인 수요까지 있기 때문에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면서 수급 불균형이 심각해지는 특성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연간 아파트 수요 4만1천호를 기준으로 보면, 10년 동안 아파트 41만호가 공급됐어야 하지만 이 시기 실제 공급 물량은 34만9천호로 6만1천호가량 차이가 난다.

② 30대 맞벌이 부부라는 새로운 수요의 등장

주택 가격 급등기와 하락기의 수요는 하늘과 땅 차이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공급은 수요에 대해 상대적으로 접근해야지 과거에 견줘 단순히 많이 늘었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상대적 공급, 상대적 수요라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가격 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주택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자 노무현 정부 시절 주택 가격이 오를 때 무리하게 대출을 끌어다 집을 산 이들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했고, 이후 주택 구매 능력이 있어도 집을 사지 않고 전월세로 거주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전 정부가 전월세 대책으로 골머리를 앓은 이유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보면, 서울의 자가점유율(자가소유 주택에서 사는 비율)은 2000년 40.9%에서 집값이 폭등했던 2005년 44.6%로 뛰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뒤 2010년 41.1%로 외려 줄었다. 한국은행 소비자동향조사의 주택가격전망 조사는 2013년 1월부터 실시됐는데, 첫번째 조사의 주택가격전망은 94로 ‘1년 뒤 집값이 내릴 것’이라고 전망한 사람이 더 많았다. 이 수치는 지난해 12월 132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의 ‘공황구매’(패닉바잉) 현상을 주도하고 있는 ‘30대 맞벌이 부부’는 최근 서울 아파트 수요를 자극하는 최대 변수다. 통계청 ‘신혼부부 통계’를 보면, 2019년 서울 신혼부부(결혼 5년차 이하)의 맞벌이 비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53.9%로 전국 평균 46.3%보다 크게 높았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맞벌이 부부 비율이 50%를 넘는 곳은 서울과 세종뿐이다. 연소득 1억원이 넘는 가구 비중은 전국이 10.2%인데 서울은 19.3%로 2배에 달한다. 서울 신혼부부 5쌍 중 1쌍은 연소득 1억원을 넘는다는 얘기다.

아이러니한 것은 서울 신혼부부의 주택소유율은 2019년 37.3%(전국 평균 44.2%)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낮다는 점이다. 더구나 아파트 거주 비율도 55.3%(전국 평균 69.8%)로 제주(32.1%)를 빼고는 전국에서 가장 낮다. 소득수준은 높은데, 주택 소유율과 아파트 거주율이 낮은 이 간극에서 서울 아파트의 초과수요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부동산학과)는 “서울에 정규직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정규직 맞벌이 부부가 많고 부모 찬스와 은행 대출까지 이용할 수 있는 이들의 주택 구매 능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무주택 실수요를 구성하는 계층이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졌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분명히 구분해서 다양한 눈높이에 맞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자칫 잘못하면 소득이 높은 계층은 민간의 고가주택을 부담하느라 힘들고,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공공주택은 외면을 받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③ 보금자리 100만호가 공급됐다면

 근본적으로는 경기에 따라 들쭉날쑥한 민간 아파트 공급에 의존하고 있는 시장에서 경기와 무관하게 공공 부문이 안정적으로 공급을 지속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간 영역은 경기변동에 의해서 공급이 늘거나 줄기 때문에 정부가 경기가 안 좋더라도 택지를 미리 축적해 놓고 주택 공급을 안정적으로 해야한다”고 말했다.

2013년 나온 7·24 대책은 2016년까지 4년간 수도권 공공택지에서 11만9천호의 주택 건설을 취소하거나 인·허가를 늦추는 방식으로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부양했다. 반값아파트로 주목받았던 보금자리 주택 공급 계획도 일부 취소됐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염두에 두고 있다는 공공자가주택의 유형인 ‘토지임대부 주택’이었던 보금자리주택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수도권에 10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뒤 축소돼 13만호공급에 그쳤다. 보금자리주택 9만호를 공급하려던 광명·시흥보금자리지구는 아예 사업이 취소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확정한 수도권 공급물량 127만호 역시 경기 변동에 따라 보금자리주택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국토연구원은 2018년 낸 보고서 ‘지역별 수요대응 주택공급 방안’에서 “아파트는 가격이 오를 때 공급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 수요에 맞춰 공급을 하는데에도 다른 주택 유형에 비해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며 “시장의 자율조정 메커니즘에 맡겨 둘 경우 수급불일치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해 국민들의 주거비 부담 증가, 자산 감소 등의 문제가 오랫동안 유지되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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