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원전 문건' 놓고 여야 장기戰 .. 전문가 "사실확인이 먼저"
정권운명 좌우 충격적 이적행위"
여권 "北원전 MB정권서 첫 언급
문서 대부분 박근혜정부서 생산"
월성 원전 1호기 폐쇄 결정의 적절성 여부를 감사하는 과정에서 터진 '북한 원전 건설 파일 삭제·은폐 의혹'이 점점 커져 정국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등에서 국정조사·특검으로 북한 원전 건설 의혹을 정조준하고 있는 만큼 두달여 앞으로 다가온 4·7 보궐선거의 판도를 흔들 뇌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정조사 해야" vs "북풍공작"=북한 원전 건설 추진 의혹을 정치권으로 가져온 주인공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9일 본인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정권과 결탁한 공무원들이 삭제한 관련 문건은 집권 세력이 그토록 숨기려 한, 원전 조기폐쇄의 모든 것이 담긴 블랙박스"라며 "특히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한 것은 원전 게이트를 넘어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이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라고 '원전 폭탄'을 터트린데 이어 국정조사 카드까지 직접 꺼내들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31일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해 "(북한 원전 건설 추진은) 경천동지할 만한 중대한 사안"이라며 "복원된 자료 원문을 즉시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김 비대위원장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한편 당내 진상규명위원회도 꾸리기로 했다. 여당이 국정조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자체적인 조사를 거쳐 진실규명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날 논란이 됐던 '이적행위' 발언을 다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대신 국제사회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을 짚으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압박을 계속 이어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문재인 대통령의 소상한 설명을 듣고 싶다"면서 지원사격에 나섰다. 주 원내대표는 "산업자원통상부 장관과 청와대 비서관이 앞장 서서 월성원전의 경제성을 조작하고, 산업부의 공문서를 500건 이상 파기한 이유는 무엇이냐. 대한민국 원전을 폐쇄하고, 북한에는 원전을 지어주려고 한 까닭은 무엇이야"면서 "문재인 민정수석이 특검으로 김대중 정부의 대북 비밀송금을 밝혔듯이 특검을 실시해달라"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우리의 핵능력은 완전 철폐하면서, 북한 원전 지원에 나서겠다는 게 이적행위가 아니면 무엇이 이적행위냐"면서 "이래서 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을 파고드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쫓아내려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앞세워서 '칼춤'을 춘 것이냐"고 따졌다.
선거를 앞두고 터진 대형 이슈에 야권의 예비후보군단도 문 대통령에게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이날 "문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법적 대응이라는 방패막이 뒤에 숨으려 하지 말라"면서 "원전게이트 진실을 이실직고하라"고 다그쳤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 또한 국회 소통관에서 "문 대통령이 국정조사는 물론 특검도 직접 요청하라"고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김 비대위원장에게 법적대응을 시사한 청와대에 "참으로 졸렬하다. 그만큼 뒤가 구리고 도둑이 제 발 저려 하는 모습"이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문 대통령을 향한 엄호를 이어갔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 논평에서 "북한 원전 건설 구상은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천영우 외교통상부 2차관이 처음 언급했다"며 "월성1호기 조기폐쇄 감사 방해를 위해 파쇄됐다는 문서 대부분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시절 생산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출신인 윤영찬 민주당 의원은 "원전 1기 건설 비용이 5조 원이라는데, 야당 동의없이 5조를 어떻게 마련해 몰래 건네줄 수 있겠느냐"면서 야당의 주장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고, 윤준병 의원은 "최근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530개 문서 목록 중에 220여개는 박근혜 정부 당시 원전국 문서임이 밝혀졌다"며 "감사원 및 국민의힘, 보수 언론은 산자부 공무원이 444개 자료를 삭제해 감사를 방해했다고 몰아세웠다. 이제 와서 별거 없으니 북한 원전 검토 자료라는 전혀 다른 건으로 여론을 자극하고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우원식 의원은 "국민의힘의 주특기는 선거철만 되면 색깔론 소재를 찾아 눈에 불을 켜는 것"이라면서 "근묵자흑인지, 초록동색인지 김 비대위원장도 똑같은 짓을 한다"고 비난했다.
◇줄다리기보다 사실관계 확인이 우선=여야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오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 공방이 계속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야권에서는 지지층을 한 데 결집할 수 있는 카드인 만큼, 국정조사·특검 요청 등 단계적으로 수위를 높여가는 방식으로 장기전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청와대가 걸려있는 예민한 사안이라는 점과 처음부터 불리한 지형에서의 싸움이라는 점 때문에 '숫적 우위를 통한 방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조사를 수용할 경우 원전이 아닌 신재생·화력발전소였다는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야권에서 북한 퍼주기 공세를 이어갈 빌미가 될 수 있으니 아예 원천차단에 나설 공산이 큰 것이다. 나아가 원전 의혹에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문제가 끼어있는 것도 여권이 언급하기 꺼리는 대목 중 하나다. 앞서 추 장관은 대전지검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자 윤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를 했고, 윤 총장은 직무정지에서 복귀한 날 원전 문제를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적인 공방보다는 우선 사실관계를 한 단계씩 확인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디지털타임스와 통화에서 "(삭제된 파일의 내용이)단순히 비핵화에 따라 어느 시점에는 원전을 보상방안으로 검토하겠다는 내용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미 1994년 제네바 합의 때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구성되고 신포에 경수로 2기를 지어주려 했던 전례가 있다"면서도 "걱정스러운 부분이지만 북한에게 비핵화를 유인하기 위해 원전 기술 일부를 제공한다거나 제공을 했다고 하면 법 위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신 센터장은 "유엔제재가 있는 상황에서 관련 기술을 제공하는 것이 국제법상 불법이고, 북한이 NPT를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적 핵기술을 그냥 제공하는 것 또한 불법이 된다, 또 국내에서도 관련 절차가 필요한데, 이를 무시하고 추진한 것이라면 형법 위반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궁금한 대목은 산자부 해당 공무원이 감사 직전 파일을 지웠다는 것이다. (실무자가) 나만 한 지식이 없었겠느냐"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정조사 등을 통해 확인해야 할 수 있다"고 했다.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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