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의 대한상의' 대정부 관계, 어떻게 풀어나갈까
관례상 대한상의회장 겸직..기업가로도 중대한 시험대
1일 최태원(61) 에스케이(SK)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차기 회장으로 단독 추대된다. 공정경제 3법 등으로 재계와 정부가 대립하는 와중에, 대표 경제단체장으로 새 인생을 시작하는 최 회장이 ‘박용만표 정책·노선’에 어떤 변화를 주면서 재계를 이끌지 주목된다.
서울상공회의소 회장단(회장 박용만·주요 대기업 대표 23명)은 이날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의회관에서 회장단 회의를 열고 박용만 회장의 후임으로 최태원 회장을 단독 추대한다. 서울상의 회장은 관례적으로 대한상의 회장직을 겸한다. 최 회장은 오는 23일 서울상의 의원정기총회에서 회장(임기 3년)으로 정식 선출되고, 이어 3월22일께 열릴 대한상의 의원총회를 거쳐 회장직에 취임한다. 다만 이날 회의에는 에스케이 대표로 장동현 SK㈜ 사장이 참석한다. 23일 정기총회에서 장 사장이 빠지고 최 회장으로 교체하는 절차를 밟는다.
대한상의와 에스케이그룹 쪽에 따르면, 이미 이달 중순부터 두 조직은 최태원 회장체제 출범을 위한 업무 현황파악 협의를 진행했다. 최 회장 추대는 본인의 적극적인 뜻과 박 회장의 요청이 맞아떨어지면서 지난해 말 최종 결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박 회장은 일찌감치 최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지목하고 너댓차례 직접 만나 후임 자리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이 만남은 요청과 설득, 수락의 과정이라기보다는 회장직 수행에 대한 조언을 하는 자리로서 성격이 더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 최 회장 스스로 경제단체장을 맡아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는 뜻이다.
박 회장은 그간 △전국 72개 지역상공회의소의 17만개 회원사가 대-중견-중소기업은 물론 소상공인까지 포괄하고 있는터라 특정 기업규모에 편중된 사고를 하면 곤란하고 △세간에서 다 알만한 규모가 큰 기업을 하는 사람이 맡아야 하며 △경제단체 회장은 이곳저곳 각종 무대에 서야하는 직업이라서 어디서든 자신의 목소리를 잘 내고 또 즐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차기 회장의 자격 조건을 언급해왔다.
재계 일각에선 차기 회장으로 구자열 엘에스(LS) 회장과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 몇몇 이름이 언급됐고, 스스로 적극적인 뜻을 비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별다른 경합 구도가 형성되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여러 기업인들을 직접 만나가며 ‘최 회장 추대’의 필요성을 설득해온 박 회장의 노력이 작용했다.
실제 박 회장은 수차례 “내가 차기 회장을 추대하는 일까지 하고 떠날 것”이라고 말해왔다. 7년6개월간 회장직을 맡아온 박 회장은 차기 회장을 찾는 과정에서 국내 대표 경제단체로서 대한상의의 역할과 색깔, 정책노선을 주로 고민해왔다. △성장·수익 외에 시대·사회적 요구에 대한 기업의 책무와 변화 △공정하고 투명한 기업활동 규범 강화 △재계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단체로서 대정부 관계에서 합리적 대안 제시 같은 자신의 노선을 잇고 더 발전시킬 재계 총수로 최 회장을 꼽은 모양새다.
최 회장은 2017년부터 경영·투자철학으로 사회적 가치 창출과 상생, 시장 신뢰를 중심으로 한 ‘딥체인지’(근본적 혁신)와 ‘파이낸셜 스토리’를 내세우면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외쳐오고 있다.
재계는 기업총수로 있으면서 가정문제 등 여러 개인적 시련을 겪어온 최 회장이 기업가로서 인생의 또다른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막바지에 공정경제 3법 등을 둘러싸고 재계가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현실에서 최 회장이 과연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낼 것인지 주목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몇몇 경제정책 방향과 기업 경영활동을 둘러싼 박용만 회장의 발언·태도를 놓고 재계 내부에서 경계하고 비판하는 모습도 간혹 있어왔다.
재계 관계자는 “취임 초기에는 최 회장이 한껏 몸을 낮추고 경제계와 정부를 향한 발언도 매우 조심할 것으로 본다”며 “개별기업 총수로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줄곧 외쳐온 것과 경제단체 대표로서 말하는 건 그 의미와 파급력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박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에 쪽방촌 봉사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알려진다. 박 회장은 평소에 종로 쪽방촌을 작업복을 입고 찾아가 빵 배달과 급식소 구호품 포장 작업을 해왔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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