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北원전 논란에 대한 '킹리적 갓심'
"전기는 산업의 쌀"이라고 말한 것은 김일성 북한 주석이었다. 그의 아들 김정일 위원장은 "전기는 산업의 심장"이라고 표현했다. 북한 최고지도자들의 전력 강조는 역설적으로 북한의 심각한 전력난을 그대로 반영한다. 인공위성으로 찍은 북한의 밤은 평양 이외에 모든 지역이 암흑의 바다다. 너무 어두워 육지와 해안선의 분간도 힘들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019년 5월, "북한처럼 경제지표가 잘 공개되지 않는 나라에서 야간조명은 그 나라의 경제 활동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할 수 있다"며 "야간조명으로 본 북한경제는 과거보다 더 가난해지고 불안정해졌으며 기상에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뜬금없이 북한의 전력난을 떠올린 것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결정에 관여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 때문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산업부 공무원들이 2019년 12월 감사원의 감사 직전 삭제한 530개 파일 중에 북한지역 원전건설추진 방안 등의 내용이 담긴 문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작성 시점은 2018년 5월로 판문점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제1차 북미정상회담 무렵이다. 파일 목록만 공개되었을 뿐인데도 파장이 심각하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가 국내 원전은 폐쇄하면서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면서 "이는 '원전 게이트'를 넘어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이적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북풍공작과도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히 대응하겠다"라고 발끈했다. 통일부도 "2018년 이후 남북협력사업으로 북한지역 원전건설을 추진한 사례가 없다"며 청와대 편들기에 나섰다.
북한에 발전소 건설추진 자체를 이적행위로 모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통일한국으로 가기 위해선 북한경제의 안정적 발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수송, 통신 등 북의 기간산업에 남한의 기술력 투입은 필수적이다. 특히 안정적인 전력생산과 공급은 북한경제가 자립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이다. 대북제재로 인해 석유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북한입장에서 원자력을 통한 값싼 전력 생산은 가뭄의 단비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북의 원자력 발전소는 우라늄 농축이나 핵무기 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원전건설 추진에 앞서, 북한의 핵무기 및 핵 제조기술의 폐기가 먼저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소규모 발전소라도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사회 동의를 얻기 힘들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주장하면서 북한에 원전건설을 추진했다는 사실은 원전에 대한 청와대의 일관되지 않은 이중적 태도를 보여준다. 정부는 안전성을 이유로 월성1호기의 조기폐쇄를 결정하고, 건설 중이던 신한울 3·4호기 등의 신규원전 건설을 중단했다. 그로 인해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국내 원전생태계는 망가지고 있다. 만약 국내 원전의 안전성 우려가 있다면 북한에 건설되는 원전 역시 위험하다. 반대로 북한에 원전건설을 고려할 정도로 안전에 자신감이 있다면, 정부의 탈원전 정책 취지가 무엇인지 되짚어봐야 한다. 국가 에너지정책이 단지 대선공약이기에 이행이거나 지지세력을 모으기 위한 계책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북 원전건설 추진 논란은 정부와 여당의 주장대로 완벽한 허구의 촌극일 수도 있다. 2018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였던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문제는 청와대의 부인이나 윤 의원의 말에 믿음이 안 간다는 것이다. 명백한 거짓말임을 알기 때문이 아니다. 조국 사태, 추미애-윤석열 갈등과정에서 드러났듯 청와대와 여당 의원들은 으레 근거 없는 변명과 옹호를 해왔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을 것 같다. 검찰이 지워진 파일을 복구해 내용을 공개하거나 산업부 공무원이 파일 내용을 밝히기 전에는 실체 없는 여야 공방만 계속될 것이다. 현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산업부 공무원이 심야 작전을 하듯, 한밤중에 관련 파일을 몰래 삭제했다는 사실이다. 통상적인 업무를 넘어서 무엇인가 비밀스레 감추려는 의도가 있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말로 표현하자면 '킹리적 갓심'이 든다. 킹리적 갓심은 왕의 '킹(King)'과 신의 '갓(God)'을 사용, 논리와 근거를 가진 '합리적 의심'을 강조하는 말이다.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동성애했다고 태형 77대 공개 집행…지켜보던 어머니 혼절
- 배정화 측 "김정현 감독과 지난해 결혼"
- "성폭행 성접대 강요…나체사진 올린다" 승설향, 탈북작가 장진성 폭로
- 이혁재 빚투, "수천만원 안 갚아" 피소
- `애로부부` 서동주, 前 남친 여사친 이야기 털어놔…MC 경악! 무슨일?
- 美 "한덕수 권한대행 역할 전적 지지…수주 내 韓美 고위급 대면외교"
- 거부권 행사 韓대행 탄핵 놓고 고민 깊어지는 민주당
- 정부, 2030년 경제안보품목 의존도 50% 이하로 낮춘다… "핵심광물 민·관 공동 투자·탐사 지원 강
- `전기먹는 하마` AI에 빅테크도 `원자력` `신재생` 영끌하는데… 에너지가 정치판 된 한국
- `ABC` 강조한 구광모… "`도전과 변화` DNA로 LG 미래 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