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칼럼] '나발니의 亂'.. 흔들리는 '차르'
러시아 정세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수감된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혹한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23일 주말 시위는 1990년대 이후 최대 반정부 시위였다. 전국 100여개 도시에서 최대 30만명이 참가했다. 시위 군중은 "푸틴은 도둑"이라고 외쳤고 경찰은 강경진압했다. 그날 3500여명이 체포됐다.
이번 시위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지리적 확대'다. 수도 모스크바와 러시아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물론이고 시위가 거의 없었던 세바스토폴, 케메로보, 심지어 영하 50도 혹한의 시베리아 야쿠츠크 시민들까지 뛰쳐왔다. 러시아 전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대규모 시위인 것이다. 청년층과 중산층 참가도 눈에 띄게 많이 늘었다. 또한 참가자의 40% 이상이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올해 44세인 나발니는 지난해 8월 국내선 여객기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로 쓰러져 독일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가 지난달 17일 귀국을 결행했다. 작정하고 감옥에 가려는 그의 행동에 국내외 언론의 주목은 높아졌다. 예상대로 그는 입국하자마자 당국에 의해 수감됐다.
수감 이틀 후인 19일 푸틴의 치부를 파헤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그의 진면목이 과시됐다. '나발니 팀'이 제작한 '푸틴을 위한 궁전, 거대한 뇌물의 이야기'라는 2시간 분량의 유튜브 영상이었다. 러시아 남부 흑해에 접한 휴양지 겔렌지크에 푸틴의 초호화 별장이 건설되고 있는 것을 폭로한 것이다. 나발니 팀은 공식적인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푸틴 궁전'에 접근할 수가 없자 고무보트를 타고 앞 바다에서 드론을 띄워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푸틴 궁전'이 처음 알려진 때는 지난 2010년이었다. 하지만 영향은 미미했다. 당시 국민들은 푸틴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듣길 원하지 않았다. 푸틴이 망해가는 나라를 살려놓은 '구세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국민들은 푸틴에게 '아방궁'이 있다는 현실을 목격했다. 부동산 가치만 10억 파운드(약 1조 5300억원)로 추산되니 '역사상 가장 큰 뇌물'인 셈이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동영상 조회수가 1억회를 넘어서면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어 넣었다.
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감중인 나발니를 지지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현 체제에 대한 불만과 반대를 표명하기 위해 참여한 것이다. 고질적인 부정부패, 유가 상승으로 인한 경제적 고통, 코로나19 봉쇄 조치 등이 국민들의 불만을 분노로 바꿔놓았다. 시위는 나발니 수감으로 촉발됐으나 정권을 겨냥한 대규모 운동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이러는 사이 나발니는 반(反)푸틴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그러자 러시아 올리가르흐(재벌) 아르카디 로텐버그가 깜짝 등장했다. BBC에 따르면 그는 친크렘린 성향의 매시 텔레그램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푸틴 궁전'의 실소유주는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로텐버그는 푸틴 대통령과는 막역한 사이다. 어린 시절부터 죽마고우였으며 유도 파트너였다. 이런 사이니 로텐버그의 공개천명을 그대로 믿는 러시아 국민들은 거의 없다.
올해 68세인 푸틴 대통령은 실질적으로 20년 넘게 장기집권 중이다. 작년 7월 헌법을 개정해 사실상 종신 대통령이 되는 길도 열어놓았다. 하지만 나빌니가 몰고온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최근의 시위는 분명히 파급력이 있다. 러시아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푸틴 입장에선 나발니가 계속 옥에 갇혀 국민이 잊어주기를 기다리는 게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위험하다. 불붙는 시위는 러시아에게 기존과 다른 미래의 선택지를 제시하는 듯 하다. 이것은 44세와 68세의 대결이다. 달리 말하면 포스트 소비에트 세대 정치인들이 처음으로 소비에트 시대를 상징하는 마지막 세대에 승부를 거는 것이다. 나발니의 반란에 '21세기 차르' 푸틴이 흔들거리고 있다. 나빌니의 '베팅'이 성공할 것인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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