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탈원전·윤석열·최재형..한 코에 꿰려는 국민의힘
[‘북 원전 지원’ 의혹 공방]
국민의힘이 31일 감사원 감사 직전 삭제된 산업통상자원부 문건에 대해 ‘이적행위’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특별검사와 국정조사 추진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야당 대표의 발언에 대해 ‘법적 조처’를 경고한 청와대 대응에 ‘강 대 강’ 전면전을 천명한 것이다.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보궐선거를 앞두고 대북 이슈를 앞세워 전통적인 보수층 결집을 꾀하고, 검찰의 월성 원전 조기 폐쇄 관련 수사를 배경 삼아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모순을 드러내고 실정을 부각하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국민의힘은 국회에서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북한 원전 추진 관련 진상조사특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원내 지도부를 중심으로는 국정조사와 특별검사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9일 ‘문재인 대통령의 이적행위’를 언급한 뒤 이틀 만에 당력을 총동원해 ‘진실 게임’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날 대책회의에는 김종인 위원장을 비롯한 비대위원들과, 김도읍·김석기·한기호 의원 등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외교통일위원회·국방위원회 간사, 이종배 정책위의장 등 원내지도부 등이 참석했다. 주말 사이 불거진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고 전면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한 셈이다.
국민의힘이 이처럼 강공으로 나선 데는 일단 대북지원과 탈원전에 부정적인 유권자들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이슈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원전 지원 이슈는 남북미 관계와도 관계된 워낙 예민한 문제여서 정부·여당이 쉽게 해명하기 어렵다. 또 20~30대 젊은 유권자들도 대북 지원에 우호적이지 않다”며 “큰 선거를 앞두고 중도·보수를 묶어낼 수 있는 호재임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탈원전을 외치는 정부가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한 비대위원도 “이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모순이 드러난 사안이고, 기본적으로 한반도 안보와도 연결된 중대한 사안”이라며 “김종인 위원장도 이 문제는 끝까지 추궁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은 오랫동안 지속된 윤석열 검찰총장·최재형 감사원장과 여권과의 충돌 원인을 북한 원전과 연결짓고 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비상식적인 윤석열 찍어내기가 너무 의아했었는데, 이제야 실마리가 풀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당의 ‘과잉 대응’도 국민의힘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탈원전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원전 지원을 검토한 정황이 공개된 이상 이에 대한 야권의 비판은 정해진 수순인데, 이에 거세게 반응하는 정부·여당의 태도들이 “뭔가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또 다른 의원은 “연초에 통합의 정치를 언급한 청와대가 야당 대표의 발언에 법적 대응을 운운하는 것을 보며 뭔가 꼬리가 잡혔다는 심증을 갖게 되지 않겠느냐”며 “야당 입장에서는 탈원전과 북한 원전 지원의 모순점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이슈를 보궐선거를 넘어 차기 대통령 선거까지 쟁점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근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최근 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등 수세에 몰렸는데, 모처럼 찾은 공세의 고삐를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이 에너지 정책에 대해 가진 신념 역시 이런 ‘전면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저서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재직할 당시 원전 건설 등 전력 공급 대책을 마련하고, 전기요금 현실화를 밀어붙인 사례를 소개하며 ‘산업의 쌀’로 불리는 전력 수급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책에서 “청와대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점검했던 분야가 전력이었다. 실물경제에 전기만큼 중요한 요소가 어디 있나”라며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은 개인적 철학에 따라 원전 가동마저 중단하고 있으니 한심하고 아찔한 일”이라고 탈원전 정책을 정조준했다.
그러나 이날 정부와 여권 관계자 주장대로,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유에스비에 원전과 관련한 내용이 없고 산업통상자원부 보고서 역시 청와대에 공식 보고한 문서가 아니라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내부 자료’라는 것으로 확인될 경우, 국민의힘에도 정치적 부담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얽혀 있는 사안의 성격상 의혹이 명쾌하게 드러나기보다는 소모적 공방으로 흐르다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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