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저런 악귀가 나왔지? '경이로운 소문' 이홍내·옥자연 [인터뷰]
[경향신문]
OCN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난 24일 종영한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드라마는 끝났지만 남은 질문이 있다. ‘도대체 저 악귀들은 어디서 나왔을까?’ 소문(조병규)을 비롯한 카운터즈와 격렬한 전투를 벌이며 극의 긴장을 이끈 두 악귀, 지청신과 백향희를 연기한 배우 이홍내(31)와 옥자연(33)에 대한 궁금증이 커진 것이다. 낯선 얼굴로 날카로운 연기력을 선보인 이 경이로운 악귀들의 연원을 짚어볼 때가 됐다. 이홍내는 지난 27일 직접 만났고, 옥자연과는 지난 1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홍내, 절대적인 뚝심
“가장 준비를 많이 했던 것은 카운터들에게 밀리지 않는 폭발적인 에너지였습니다.”
<경이로운 소문>의 팽팽한 긴장감을 완성한 것은 지청신의 타협을 모르는 악랄함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몇 명이든 개의치 않고 그야말로 ‘절대적’으로 폭발하는 극악무도함을 완성하기 위해 이홍내는 ‘압도적인 에너지’에 가장 집중했다고 말했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시거, <다크나이트>의 조커 등 다양한 역할들을 참고하며 서늘하고도 기괴한 악인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악귀 지청신’은 얼굴의 오른쪽 근육을, ‘인간 지청신’은 왼쪽 근육만 사용하며 이중적인 면모를 강조하고 싶었는데, 제가 봐도 기괴하고 낯선 얼굴이 완성된 것 같아요.” ‘인간 이홍내’와 “전혀 비슷하지 않은” 지청신을 빚어내기 위한 그의 부단한 노력이 예상 밖의 다정한 말투로 전해졌다. “늘 불안하고 부담스러워요.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고 싶은데 매번 기괴하고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니까(웃음).”
그는 전작 SBS <더 킹-영원의 군주>, tvN <유령을 잡아라>에서도 트레이드 마크인 민머리로 출연해 짧지만 강렬한 악역 연기로 대중에 눈도장을 찍었다. “<경이로운 소문> 유선동 감독님께서 제게 ‘거친 에너지’를 많이 느꼈다고 하셨어요. 아무래도 경남 양산이라는 출신지에서 오는 ‘로컬 바이브’가 아닐까 싶습니다.”
에너지는 ‘로컬’에서 얻었지만 세상은 영화로 배웠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서울에 와본 적도 없어요. 영화에서 표준어를 처음 들어봤고요. 세상을 살아가는 법은 모두 영화로 배웠어요. 어릴 땐 양산에 극장이 없어 비디오방에 도시락을 싸가서 하루에 5편씩 영화를 보곤 했죠.” 배우는 고민조차 필요 없는 당연한 꿈이었다. “군대에서 배우가 되기를 결심해 서울에 온 순간부터 단 한 번도 그만둘 생각을 해본 적 없어요. 그 생각이 지금까지도 재밌게 연기를 할 수 있게 된 베이스가 됐죠.”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경이로운 소문>은 그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겠냐는 질문에 그는 뜻밖에 담백한 답을 내놓는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작품마다 똑같은 즐거움을 느낍니다. 지금보다 덜 사랑받고, 덜 주목받고, 적은 분량인 역할을 했을 때도 저는 너무나 행복했어요. 늘 최선을 다했거든요.”
■옥자연, 난데없는 설득력
“백향희, 쉽지 않았죠. 저랑 너무 달라서요. 그런데 일을 막 저지르는 면은 비슷한 것 같아요.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를 생각하면 그래요. 오직 감정에만 충실했거든요.”
극중 지청신에 필적하는 유일한 3단계 악귀, 백향희에게는 이렇다 할 사연이 없다. 남편 둘과 친딸까지 살해한 전력 정도만 스쳐 지나간다. 그가 어째서 악귀가 들어설 만큼 잔악해졌는지 드라마는 설명하지 않는다. 백향희의 매력은 이 ‘난데없음’에서 온다. 이유도 없이 마구잡이로 까불며 좌중을 헤집는다.
“처음엔 사치와 성형에 집착하는, 악녀의 클리셰는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 여성 악역의 전형 안에 마초적인 짐승 악귀가 들어선다면, 오히려 이 클리셰를 재밌게 끌고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백향희는 난데없는 악귀지만, 미디어에서 오랫동안 답습해온 악녀의 전형을 지녔다. 돈을 위해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그 돈을 성형과 명품으로 낭비한다. 옥자연은 일견 납작해 보이는 이 인물에 설득력과 입체성을 부여하려 노력했다. 도하나(김세정)와의 결투에서 백향희가 뱉는 대사, “너나 나나 가족 하나 없는 더러운 팔자”가 힌트가 됐다. “백향희가 학대에 가까운 가정환경에 노출돼 있었을 것이란 심리적인 접근부터 시작했죠.”
그는 악녀의 클리셰 위로 악귀의 마초성을 들이부으며 ‘양성적인’ 백향희를 완성했다. “12화에서 백향희가 지청신에게 당하고 있을 때, 모르는 행인들이 ‘여자를 그렇게?’라며 말리는 장면이 나왔죠. 그때 백향희가 자신을 ‘약한 여자’로 보는 게 어이없다는 듯이 웃거든요. 어떤 성에도 갇히지 않고 강해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그의 학력은 드라마의 흥행과 함께 화제가 됐다. 대학 졸업 후 덜컥 대학로로 이사를 간 것이 그의 경력의 시작이다. 단지 연극이 하고 싶어서였다. 난데없는 도약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노는 거랑 일하는 게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즐거운 직업이에요. 배우들은 연기를 마약에 비교하거든요. 시작을 하면 안 돼요, 아예. 끊을 수가 없어서요.”
“오글거려서 잘 못 보긴 하지만 재밌어요.” <경이로운 소문>에서의 연기에 대한 자평이다. 현장에서 연기와 관람이 동시에 이뤄지는 연극과 달리, 영화와 드라마는 카메라와 편집을 통해 배우의 연기를 재가공한다는 점에서 “내가 나를 만나는 게 경이롭다”고 말하는 옥자연. 그는 차기작으로 tvN 드라마 <마인>을 준비 중이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
- [설명할경향]검찰이 경찰을 압수수색?···국조본·특수단·공조본·특수본이 다 뭔데?
- 경찰, 경기 안산 점집서 ‘비상계엄 모의’ 혐의 노상원 수첩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