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분·15분·10분..서울·부산시장 선거, 분 단위로 다투는 도시정책

허남설 기자 2021. 1. 3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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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프랑스 파리가 지향하는 ‘15분 도시(ville du 1/4h)’ 개념도. 집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식료품점, 병원, 운동시설, 공원 등 생활에 필요한 시설에 15분 내에 닿을 수 있다는 개념을 설명한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 홈페이지(https://annehidalgo2020.com/)


| 박영선 “21분 도시”, 박형준 “15분 도시”

| 비대면·탄소중립 등 ‘포스트 코로나’ 담론

| “표절” 주장도…‘원조’는 이달고 파리시장

4월 재·보궐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대도시를 소규모 생활권으로 잘게 쪼개는 도시개발 구상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15분 도시(La ville du quart d’heure)’ 개념을 차용해 서울과 부산을 거주지를 중심으로 업무, 의료, 문화, 여가 등 기반시설을 모두 갖춘 ‘○○분 도시’로 재구성하겠다는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코로나19 이후)’ 시대 핵심 담론으로 언급되는 비대면과 직주근접, 탄소중립을 반영한 공약이다.

‘○○분 도시’ 공약은 서울과 부산에서 모두 등장했다. 정당을 가리지 않고 각기 다른 이름으로 여러 후보의 주요 공약으로 자리잡았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지난 26일 출마선언을 하면서 “21분 만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 도시”를 대표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른바 ‘21분 컴팩트 도시’다. 서울을 인구 50만명 정도의 21개 다핵구조로 분산하고, 각 지역에선 21분 이내 닿는 거리에 직장, 학교, 병원, 공원 등 필수시설들을 모두 배치하겠다는 안이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예비후보는 지역 생활권 조성 공약을 ‘10분 동네’란 이름으로 제시했다.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는 지난해 12월28일 연 1차 정책발표회에서 ‘살기 좋은 15분 도시’ 구상을 밝혔다. 도심에 시속 300㎞에 이르는 초고속 교통수단을 도입해 도시외곽 공항까지 망라하는 15분 생활권을 만들면서, 집에서 걸어서 의료·교육·상업시설에 15분 내에 닿는 50개 생활권을 만들겠다는 공약이다.

왼쪽부터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 조은희 국민의힘 서울시장 예비후보, 김진애 열린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 연합뉴스


‘○○분 도시’ 유행의 배경엔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팽창한 문제의식이 있다. 무엇보다 거리 두기 시행에 따라 재택근무가 늘면서 ‘동네 생활권’에 대한 관심이 보다 커졌다는 점이 꼽힌다. 장시간 출퇴근과 밀도 높은 대중교통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 근처에 더 많고 다양한 시설을 요구하게 됐다.

박영선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미국 뉴욕은 1918 스페인 독감 이후 직장과 주거 분리 등 각 기능에 따라 분리배치하는 조닝(zoning)을 시행했다”는 해석을 끌어들이며, “코로나19 이후 서울도 중앙집중에서 자족적인 다핵분산도시로 대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7일 KBS라디오에 출연해선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서울의 모습은 달라야 한다”며 “도심 집중화를 다핵화로 바꿔 출퇴근 거리가 긴 고단한 삶을 편안한 삶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파괴가 감염병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화석연료를 쓰는 교통수단에 대한 경각심도 작용했다. 박형준 후보는 부산형 15분 도시의 기대효과로 ‘이동에너지 배출 최소화’, ‘탄소중립형 친환경 전환도시’ 등을 꼽았다. 박영선 후보는 “(21분 도시가 되면) 시민의 삶이 경쟁적이고 대량소비적인 삶에서 삶의 질이 높아지고 환경과 함께하는 삶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했다.

저마다 ‘○○분 도시’ 정책을 발표하다보니 표절 시비가 일기도 했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31일 “지난해 11월부터 책과 포럼에서 25개 다핵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면서 “박영선 후보의 ‘21분 도시’에선 조은희표 구상과 박형준표 ‘15분 도시’ 공약을 짜깁기한 악취가 난다”고 주장했다.

현재 파리의 모습(왼쪽)과 ‘15분 도시’ 개념에 따라 재구성한 모습(오른쪽)을 비교한 그림. 초등학교 운동장 일부에 공원을 조성해 인근 주민들과 공유하거나, 교차로에 공유텃밭을 만드는 식으로 한 장소에 여러 기능을 복합하는 방안을 표현한다. 시민들의 주거지 가까운 곳에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기 위한 제안이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 홈페이지(https://annehidalgo2020.com/espace-presse/), 국토연구원 국토이슈리포트 제32호 <프랑스 안 이달고 파리시장의 ’내일의 도시 파리’ 정책공약>(이수진·허동숙)


하지만 후보들이 언급하듯 ‘○○분 도시’의 원조격은 파리다. 2014년 4월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시장 취임 이후 파리는 시민들이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이내 출퇴근 거리에 살면서 ‘배우고, 운동하고, 스스로를 돌볼 시간’을 갖는 도시를 추구했다. ‘15분 생활권’을 실현하기 위해 주거지 가까운 곳에 문화, 체육, 의료, 상업시설을 조성하고 초등학교 운동장을 공원화해 주말엔 인근 주민에게 개방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현재 파리의 15분 도시 개념이 미국 디트로이트 등 여러 도시에서 변형돼 적용된 점을 감안하면 표절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서울시 역시 2014년 2030서울도시기본계획(서울플랜)에서 ‘3도심 7광역중심 12지역중심’이란 다핵구조를 제시한 바 있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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