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병아리와 프라이 / 유선희

유선희 2021. 1. 3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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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유선희 ㅣ 문화팀장

“<한겨레> 역시 기자단 가입도, 기자실 출입도 못 하던 때가 있었잖아요?”

얼마 전 <미디어오늘> <뉴스타파> 등의 소송을 계기로 본격화한 ‘법조 기자단 폐쇄성 논란’에 관한 조언을 구하자 한 교수가 던진 반문이다. 1988년 창간 즈음해선 기자단과 기자실 문화의 ‘피해자’였던 <한겨레>가 이젠 기득권 언론이 되어 카르텔의 공고화에 한몫하는 것 아니냐는 질책이었다. 그는 <한겨레>가 앞장서 “법조 기자단 해체”를 선언하지 않는 한, 관련 기사 자체가 ‘유체이탈 화법’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지난 1월13일치 19면에 실린 ‘법정 가는 ‘법조 기자단 문제’…언론 스스로의 대안은?’ 기사는 팀장인 내게도 큰 고민과 과제를 남겼다. 후배와 “취재 후기를 써보자” “후속 기사를 준비하자”는 다짐도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26일 청와대가 ‘검찰 기자단을 해체해달라’는 국민청원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무려 34만여명의 동의를 얻은 이 청원에 대한 답변은 다소 맥이 빠지는 수준이었다. 강정수 디지털소통센터장은 “기존 기자단이 다른 언론사를 평가하고 출입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논란이 있다”며 “기자단 자체 운영과 별도로 정부도 출입증 발급, 보도자료 배포 범위 등 기존 관행을 면밀히 살펴보고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기자단 운영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해체 요구에 대한 즉답은 피해간 모양새다. ‘청와대 답변은 선언적일 뿐, 임기 말 정부가 굳이 무리수를 두겠느냐’는 회의론이 나오는 이유다.

따지고 보면, 청와대가 그 이상의 입장을 밝힐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기자들 자체 모임인 기자단을 정부가 폐쇄하겠다고 나설 경우 ‘언론 탄압’이란 반발을 부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앞서 2007년 참여정부가 기자실을 폐쇄하고 브리핑 룸 시스템을 도입하자 전 언론이 “기자실 대못질” “언론 탄압”이라며 비판 기사를 쏟아낸 바 있다.

법조 기자단이 논란의 중심에 서긴 했지만, 실제론 법조 못지않게 가입 문턱이 높은 기자단은 여전히 많다. 경찰청, 서울시경찰청,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국방부, 서울시청 등이 대표적이다. 가입을 위해선 기자단 자체 기준을 통과해야 하거나, 타이트한 기자실 출석률을 채워야 하거나, 기자협회에 소속돼야 하는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물론 조건을 갖춰도 기자단 투표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기자단 가입 조건이 까다로운 출입처는 대개 중요한 기사가 생산되고 가치 있는 정보가 유통되는 ‘주요 출입처’이자 언론사 간 경쟁이 치열한 출입처다. 소속 기자들은 보도자료, 간담회, 브리핑, 기자실 이용 등에서 각종 편의를 누리며, 때론 ‘엠바고’를 활용해 쓸데없는 출혈 경쟁을 피한다. 과거엔 기자단 가입이 출입처 내 해외 출장, 부수 확장, 광고 수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자단의 가장 큰 이점은 취재원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어 ‘단독 기사’의 소스를 얻어낼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이다. 기존 기자단 입장에선 이런 ‘이점’을 굳이 후발 언론사와 나눌 이유가 없으니 문제를 애써 외면한다. 물론 일부에서 내세우는 ‘사이비 언론 난립 방지’ ‘최소한의 거름망’ 등이 아예 근거 없는 논리만은 아니다. 그러나 ‘따옴표 언론, 받아쓰기 언론’에 지친 국민에겐 그 어떤 논리도 ‘온전한 알 권리 보장’보다 앞설 순 없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사의 획일화와 유착의 원인이 되는 ‘출입처주의’에서 벗어나 언론 스스로가 취재 방식과 편집 방향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결국 언론의 자정 노력 없이는 폐쇄적 기자단 운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조언이다. 앞서 <한겨레>를 아프게 질타했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계란은 안에서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밖에서 깨뜨리면 프라이밖에 못 된다. 언론개혁도 마찬가지다.”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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