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자재 업계의 '왕회장' 60년 지킨 현장 떠나다
◆ 정상영 KCC 명예회장(1936~2021) ◆
1958년 슬레이트 제조기업 '금강스레트공업주식회사'를 창업한 뒤 자산 기준(2020년 11조원)으로 재계 32위 종합건자재 업체 KCC로 키운 고인은 '산업보국' 정신으로 지난 60여 년간 국내 기업인 중에서는 가장 오래 현장을 지켰다. 선진국들이 주름잡고 있던 도료(1974년), 유리(1987년), 실리콘(2003년) 사업에 차례로 진출하고 건축·산업자재 국산화에 매진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뚝심 덕분이다.
정 명예회장은 '왕 회장'으로 불렸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으로, 외모나 말투 등이 흡사해 '리틀 정주영'으로 불리기도 했다. 고인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큰형인 '정주영 명예회장'을 꼽았다.
특히 그의 '정씨 집안'에 대한 자부심은 각별해 2003년 조카며느리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시숙의 난'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의 경영권은 정씨 일가의 것"이라며 '현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은주 여사와 정몽진 KCC 회장,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 정몽열 KCC건설 회장 등 3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3일 오전 9시다.
정 명예회장 별세로 범현대가를 이끌던 '영(永)'자 항렬을 쓰는 창업 1세대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됐다. 현대가 1세대인 정주영 명예회장(2001년 별세)을 비롯해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2005년),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2005년),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2006년), 정희영 여사(2015년) 등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안병준 기자]
건자재 왕회장 정상영 떠나다
맏형 도움 마다하고 23살 창업
KCC 재계 32위 기업으로 일궈
도료·유리·실리콘 국산화 성공
80대에 매일 출근 '현장 회장님'
생전 큰형을 아버지처럼 따라
말투·외모도 정주영과 닮은꼴
현대家 '영' 돌림자 모두 별세
정상영 명예회장은 큰형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뒷바라지를 마다하고 23세의 젊은 나이에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하며 경영인의 길로 들어섰다. 초기에는 석면 슬레이트 지붕 같은 건자재를 만들며 사업 기반을 다졌고, 1965년에는 건설사업부를 신설해 당시 새마을운동 바람을 타고 꽤나 큰돈을 벌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산업보국' 정신을 바탕으로 건축·산업자재 국산화에 본격 나섰다. 1974년에 '고려화학'을 세워 유기화학 분야인 도료 사업에 진출했고, 1989년에는 건설사업 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건설)을 설립했다. 2000년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해 금강고려화학으로 새롭게 출범한 뒤 2005년에 사명을 현재 사용하는 KCC로 변경했고, 건자재에서부터 실리콘과 첨단 소재에 이르는 글로벌 첨단 소재 화학기업으로 키워냈다. 첨단 기술 경쟁력 확보에도 앞장서 1987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 봉지재(EMC) 양산화에 성공했고, 반도체용 접착제를 개발하는 등 반도체 재료 국산화에 힘을 보탰다.
1996년에는 수용성 자동차 도료에 대한 독자 기술을 확보하면서 도료 기술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2003년부터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실리콘 원료(모노머)를 국내 최초로 독자 생산해 한국을 독일·프랑스·미국·일본·러시아·중국에 이어 실리콘 제조 기술을 보유한 일곱 번째 국가로 만들었다.
소탈하고 검소한 성격으로 평소 임직원에게 주인의식과 정도경영을 강조하며 스스로 모범을 보인 경영자였던 고인은 동국대, 울산대 등에 사재 수백억 원을 기꺼이 쾌척하는 등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 마지막까지 '왕회장' 추모
정상영 명예회장은 '왕회장'인 정주영 명예회장을 각별하게 따랐다. 큰형이지만 스물한 살 터울이라 아버지에 더 가까웠을 만큼 높은 존경심을 보였고, 왕회장도 그런 그를 아꼈다.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두문불출하던 왕회장이 다시 산업 현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도 1995년 KCC 여주 유리공장 3호기 점화식 때였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올해 초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는지, 마지막 가는 길에 앞서 사후 20주기를 맞은 왕회장의 일생과 창업 스토리, 기념비적인 업적과 KCC와의 인연을 담은 KCC 사보를 내기도 했다. 고인은 '정씨 가문'에 대한 자부심도 강해 2003년에는 조카며느리인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과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을 두고 '시숙부의 난'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정상영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경영권은 정씨 일가의 것"이라며 정통성을 강조했다.
◆ 범현대가 1세대 퇴장
정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범현대그룹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도 막을 내렸다. 현대가 1세대는 동네에서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일꾼이었던 부친을 닮아 맨손으로 글로벌 그룹을 일으키며 한국 경제에 주춧돌을 놨다. 범현대 일가 시작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의 농사꾼이었던 고(故) 정봉식-한성식 부부다. 부부는 장남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해 모두 6남1녀를 슬하에 뒀다. 범현대가 1세대는 이름에 '길 영(永)' 돌림자를 쓴다.
1946년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계열사를 설립하며 삼성그룹과 1, 2위를 다투는 현대그룹을 이룩한 장남 정주영 회장이 2001년 타계했고 '포니정'으로 불린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2005년, 4남),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2005년, 3남),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2006년, 2남)이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2015년에는 장녀 정희영 여사가 별세했고, 다섯 번째 동생인 정신영 씨는 1962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지병으로 32세에 요절했다. 범현대가는 2000년대 초 경영권 승계작업에 속도를 내며 '몽(夢)'자를 쓰는 2세대로 넘어간 데 이어 현재는 '선(宣)'자를 돌려쓰는 3세대로 넘어가는 중이다.
[안병준 기자 /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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