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경제부총리 '수난시대'
정치논리에 경제정책 종속당한 탓
부총리 위상 약해지고 비효율 만연
전문가로 黨 정책위의장 임명하되
대통령부터 부총리에 힘 실어줘야
한국 경제의 성공 요인으로 경제 논리에 충실한 경제정책, 예산권과 정책조정권을 겸비한 경제부총리 제도, 그리고 능력 있는 인사를 경제부총리에 임명하고 정치적으로 보호해주는 대통령의 리더십 등을 들 수 있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잘 지킨 결과 우리는 짧은 기간에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뤘고 이를 국제사회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난 1987년 6·29 민주화 선언 이후 이러한 원칙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우리는 1997년 말 외환 위기를 겪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이 처방한 경제 개혁 조치를 과감히 추진해 위기를 조기에 극복했으나 경제정책에서 정치 논리가 우선하는 관행은 점점 심해져 국가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지난 3년 반은 경제부총리 ‘수난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론적 정체성이 애매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다 지쳐 사퇴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에 이어 임명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안쓰러울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난지원금 등 주요 정책에서 정치권에 번번이 밀린 홍 부총리는 최근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제도화하려는 집권당의 시도에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 나라가 기획재정부의 나라냐”라고 질책했고 문 대통령 역시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일정 범위에서 손실 보상을 제도화할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함으로써 관료 출신 경제부총리보다 정치인 출신 국무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필자는 1988년 “정치권에도 경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권고로 정치권에 들어와 12년간 의정 활동을 하면서 집권당의 정책조정실장·정책위의장 등의 직책을 맡아 정치 논리와 경제 논리 간 균형을 잡는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는 경제 전문가가 정책위의장직을 맡았고 당 서열도 원내대표보다 높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정책위의장의 위상이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 정도로 추락해 정책 전문성보다 득표력이 선택 기준이 돼버렸다. 그 결과 경제부총리가 추진하는 경제정책은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기재부와 경제부총리는 예산권과 정책조정권은 물론 공공정책국을 통해 공공 기관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치 논리가 경제정책을 지배하면서 기재부와 경제부총리의 영향력은 정치 권력을 가진 청와대나 집권당 앞에서는 무력하고 여타 정부 부서나 공공 기관에는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한다. 그 결과 정작 낭비 요소가 큰 것은 막지 못하면서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명분으로 힘없는 정부 부서나 공공 기관의 경영 자율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 예컨대 공공 기관이 일을 잘하기 위해 한두 명 증원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나, 청와대나 집권당의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 사업으로 둔갑시키면 쉽게 정원을 늘릴 수 있어 공공 부문 비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개선책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당 정책위의장을 선출직에서 임명직으로 전환하고 정책 전문가를 그 자리에 앉혀야 한다. 그렇게 되면 경제정책 추진 과정에서 경제 논리와 정치 논리가 합리적인 방향으로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갈 수 있다. 다음으로 정부 부처는 물론 정치권을 설득할 수 있는 전문성과 정치력을 동시에 갖춘 인사를 경제부총리에 임명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경제부총리 인선 기준이 타 부처 장관을 통솔할 수 있는 경륜과 대통령 및 정치권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력이었다. 최근 이런 전통이 무너지면서 경제부총리와 기재부가 리더 역할을 못 하고 경제정책 기조도 흔들리고 있다. 끝으로 대통령은 이런 조건을 갖춘 인사를 발굴해 경제부총리에 임명하고 이후 그를 정치적으로 확실하게 밀어줘야 한다. 경제부총리가 갈팡질팡하면 나라 경제가 흔들린다는 생각으로 경제부총리를 바로 세우는 일에 대통령과 정치권이 앞장설 것을 건의한다.
/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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