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영국 총리가 맨유 공격수를 무서워하는 이유 / 티모 플렉켄슈타인

한겨레 2021. 1. 3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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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티모 플렉켄슈타인

런던정경대 사회정책학과 부교수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백만장자 축구 선수들과 사회 최하층 사람들 사이 삶의 격차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더 극심하게 커졌다. 영국 어린이 3명 중 1명꼴(약 410만명)로 빈곤 속에서 자라고 있으며, 아이들 250만명을 포함해 약 800만명의 사람들이 끼니를 걱정한다. 빈곤가구의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무상급식은 말 그대로 굶주림에서 구해주는 ‘생명선’이지만, 이조차 학교 문이 닫히면 끊어진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젊은 공격수 마커스 래시퍼드는 가난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안다. 이 스물세살의 선수는 맨체스터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의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 식구 부양을 위해 여러 일을 동시에 해야 했던 래시퍼드의 엄마는 자녀들을 먹이기 위해 때로 자신의 끼니를 걸러야 했다. 이런 경험은 코로나19 대유행 사태에서 래시퍼드를 매우 유능한 사회운동가로 만들었고, 보리스 존슨의 보수당 정부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수년 전부터 노숙자 지원 캠페인을 주도해 주목받았던 래시퍼드는 지난해 3월 영국 정부의 첫번째 봉쇄로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 자신의 명성을 무료급식 지원 캠페인을 돕는 데 썼다. 이 캠페인은 신속하게 2천만파운드(약 300억원)를 모금했고, 맨체스터 지역 아이들 40만명을 지원하려던 목표는 전국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1200만끼 이상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발전했다.

래시퍼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난해 6월 보수당 정부에 공개편지를 보내 ‘학교가 문을 닫는 여름 방학에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무료 바우처 제도를 계속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총리실은 여름 방학 동안 한주 15파운드씩 바우처를 제공하라는 요구를 즉각 거부했고, 장관들은 방어에 나섰다. 정부가 래시퍼드의 인기와 그의 트위터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보수당 의원들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분노가 커지면서, 정부는 당혹스럽게도 24시간도 안 돼 ‘유턴’을 해야 했다. 여름급식 기금이 조성되고, 존슨 총리는 래시퍼드에게 전화를 걸어 코로나19 사태 속에 힘든 이들을 도우러 나선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해야 했다. 평론가들은 래시퍼드의 캠페인이 “정치적 마스터클래스(최상급 수업)”라며 강력한 사회운동가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래시퍼드는 계속해 아동들의 결식 문제를 퇴치하고자 주요 슈퍼마켓 체인 등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한편, 정부의 추가 지원을 촉구했다. 래시퍼드는 빈곤가정에 대한 정부의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며 실망감을 표시했고, 정부에 대한 압박을 높이기 위해 아동 빈곤을 종식하기 위한 포괄적인 정책을 요구하는 청원운동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이 청원에 110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지난달 12일 래시퍼드는 무상급식 바우처 대신 제공되는 ‘먹거리 바구니’가 매우 부실하다고 지적해, 다시 정부를 당혹스럽게 했다. 보리스 존슨 정부의 정책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물론 전국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공격수’에 의해 번번이 결정됐다. 소셜미디어의 사용에 능숙한 래시퍼드는 경기장에서 상대를 압도하듯, 정부보다 몇번이나 앞서갔다. 현재 그의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프리미어리그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보수당 의원들은 축구선수 한명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에 분개하고 있다. 야당인 노동당과 당수 키어 스타머에겐 억울할 수 있겠지만, 래시퍼드가 야당이 관철하지 못한 정책 변화를 이뤘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스물세살의 축구선수가 자신의 경험과 사회 정의를 바탕으로 영국 정치에서 권위를 키우고, 정치적으로 가장 강력한 상대에게 성공적으로 도전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는 분명히 슈퍼카와 호화로운 파티와 관련된 직업군에서는 보기 힘든 예외적인 사회적 책임감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요즘 유명인들의 생활과 소셜미디어 문화를 다소 회의적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유명세를 상업적 이익에 이용하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참신하다. 다른 이들도 래시퍼드의 모범을 따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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