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지저귐·종소리..오르간은 우주 같은 악기"
기원전 240년 께 시작된 악기
웅장하고 장엄해 교회서 연주
세계적 콩쿠르 섭렵 실력파
24일 롯데콘서트홀 공연
바흐·비도르 작품 연주하면서
건물 3층 높이 악기 내부도
카메라로 비춰 작동원리 조명
원곡은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지만, 이날 장례식에선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됐다. 웅장하고 장엄한 오르간 특유 음색으로 이 곡은 완벽한 진혼곡(레퀴엠)으로 재탄생했고, 장례식에 참석한 3000여 명 조문객 마음을 적셨다. 임종 전 자신의 장례식에서 연주할 작품으로 이곡을 직접 골랐던 쇼팽은 파이프 오르간이 노래할 자신의 작품을 상상하며 죽음 이후 영원한 삶을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최근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난 오르가니스트 박준호(35)는 "오르간은 음이 이내 사라지고 마는 피아노와 달리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는 한 소리가 영원히 지속된다"며 "영원은 상당히 철학적인 개념인데 그래서 오르간 소리가 종교성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준호는 오는 2월 2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파이프 오르간의 음악세계를 펼쳐내는 기획공연 '오르간 오디세이'에 나선다. 그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 중 1악장 알레그로와 비도르의 오르간 심포니 5번 등을 연주하고 오르간의 작동 원리에 대한 해설도 직접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윤이 콘서트 가이드로 나서 직접 소형 카메라를 들고 파이프 오르간 내부까지 들어가 관객들이 작동원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오르간이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를 들려드릴 계획이에요. 오르간은 고유의 소리 외에도 플루트, 오보에 같은 관악기 소리는 물론 현악기 소리를 낼 수 있어요. 심지어 종소리와 새가 지저귀는 소리까지 낼 수 있는 오르간도 있고요. 제가 연주를 할 때 김지윤 씨가 오르간 내부로 들어가 파이프에 물건을 올려놓아 소리가 어그러지는 모습도 보여드릴 거예요. 또 음량을 조절하는 스웰박스가 작동하는 모습까지 보여드리며 오르간 작동 원리를 샅샅이 알려드리려고 해요. 분명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겁니다."
박준호는 오르간을 장엄하고 종교색이 짙은 악기로만 바라보는 것은 한쪽면만 본 것이라고 했다.
"오르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240년께부터 시작됩니다. 오르간이 교회 악기로 기능하기 시작한 건 서기 1000년이 넘어서고요. 오르간은 원래 교회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속적인 악기였던 거죠. 귀족들 연회와 검투사 경기에서도 연주됐어요. 물론 장중하고 성스러운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때로는 굉장히 익살스럽고 사람을 놀래기도 하고, 또 따뜻한 위로를 건내기도 합니다. 수많은 소리가 담긴 우주와 같은 악기라고 말할 수 있어요."
대부분의 오르가니스트가 그렇듯 박준호도 어릴 적 피아노를 접하며 음악에 눈을 떴다. 초등학교 시절 플루트도 3년여간 배웠다. 체르니 같은 연습곡만 시키는 피아노 레슨에 싫증을 느낄 무렵 교회에 놓인 오르간 건반을 눌러보고선 귀가 번쩍 뜨였다. 외관은 건반악기지만 본질은 관악기인 오르간을 만나기 위해 박준호는 앞서 피아노와 플루트를 배우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콘솔(연주대)에서 건반을 누르면 파이프 마개가 열리고, 파이프를 통해 바람이 전달돼 소리를 내게 돼요. 반면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죠. 둘 다 건반악기지만 소리를 내는 원리에서 보면 오르간은 관악기이고, 피아노는 타악기이죠."
박준호는 고교 재학 중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예술영재로 입학했고, 이후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와 프랑스 툴루즈 국립음대를 졸업했다. 독일 뉘른베르크 콩쿠르와 더블린 오르간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프랑스 샤르트르 국제 오르간 콩쿠르와 독일 브레멘 슈니트거 국제 오르간 콩쿠르에서 준우승하며 세계적인 권위 콩쿠르를 모두 섭렵했다.
유럽 무대에서 맹활약하며 박준호는 유럽 내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 100여 곳 장소에서 연주를 했다. 주로 성당과 고성에서의 연주였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다른 클래식 악기들은 규격이 정해져 있어요. 음색도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론 같은 소리를 내죠. 하지만 오르간은 장소마다 천차만별이에요. 크기뿐만 아니라 파이프 개수, 건반의 단수와 낼 수 있는 음색 수까지 다양해요. 새 오르간을 만날 때마다 조작법을 익히려면 꽤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게 오르간의 매력이기도 하죠. 세상의 모든 오르간이 다 같았다면 아마 오르간을 계속하지 않았을 거예요."
클래식 악기 중에서도 오르간은 특히 예전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진화와 진보를 당연시 하는 현 시대 흐름과는 방향을 달리 하는 악기인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굉장히 빨리 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귀를 즉각 만족시켜줄 수 있는 음악을 원하죠. 하지만 인간 내면에는 지적욕구와 정서적 고양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오르간으로 연주하는 바흐의 푸가를 듣다보면 소리의 퍼즐들이 한 조각씩 맞춰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오르간에는 분명 우리의 지성과 정서를 함양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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