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신고 후 불이익 받아"..실질적 구제 제도 마련 요구
'신고했다' 136건, '신고 이후 불이익 받았다' 123건
"실효성 있는 독립기구 필요..조사·구제 제도 마련"
[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인 A씨는 최근 가해자를 회사에 신고했다. 그러나 A씨는 신고부터 징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징계 권한이 있는 이들과 면담조차 하지 못했다. 오히려 가해자만 그들과 소통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게다가 A씨는 사건이 처리되는 동안 성희롱, 직장 내 따돌림을 조성했던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근무해야 했다. 제대로 된 징계를 기다렸지만, 그마저도 흐지부지됐다. A씨는 당시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이른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한국 사회에서 시작된 지 3년이 흘렀지만, 직장 내 성희롱은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게다가 피해자 10명 중 6명은 성희롱을 당하고도 신고조차 못했고, 피해자가 용기를 내어 신고했더라도 대다수는 직장 내에서 오히려 불이익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2017년 11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3년 동안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총 1만101건 중 자세한 피해 내용까지 확인할 수 있는 364건의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제보를 분류해 분석한 결과를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한 이들 중 신고했다는 비율은 37.4%(136건)에 그쳤고, 이들중 신고 한 불이익을 받았다는 비율은 90.4%(123건)에 달했다. 피해 제보엔 직장 내 성희롱 발생 뒤 사측이 마땅히 해야 할 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례도 쏟아졌다.
직장갑질119에 제보한 B씨는 “재직 중 상사로부터 여러 차례 인격 모독, 성희롱, 폭행, 해고 협박을 당한 탓에 우울증 진단을 받아 회사에 산재 신청을 했지만, 회사가 거부했다”며 “결국 병가 휴직을 쓴 뒤 복귀했어도 회사는 가해자와 같은 장소로 출근하기를 강요했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제보자 C씨는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를 신고했다가 또 다른 상사로부터 오히려 “가해자가 잘 생겼으면 안 그랬을 것(신고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이후 C씨가 가해자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는데도 가해자는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직장 내 성희롱 신고 뒤 불리한 처우를 받았다는 제보도 잇따랐다. 성희롱 피해자인 D씨는 “가해자가 징역을 선고받고 해고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지만, 다른 상사들이 회사를 시끄럽게 만들었다고 가해자를 두둔하면서 피해자들을 괴롭혔다”며 “성추행 사건 이후 회사 순익이 줄어든 것을 피해자들 탓으로 돌리며 눈치를 주고 따돌렸다”고 말했다.
제보자 E씨 역시 “피해자 부탁으로 상사 성추행을 고발했는데, 회사는 신고 사실을 가해자에게 바로 전달하고 아무런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피해자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뒀고, 가해자는 신고자인 저를 사사건건 괴롭히고 있다”고 토로했다. 직장 내 성희롱 신고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진 셈이다.
현행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피해근로자 등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직장갑질119 측은 “2018~2019년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신고 건수는 2380건인데,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건수는 20건밖에 되지 않는다”며 “처벌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직장 내 성희롱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적 관계에서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니고, 피해자가 잘못해 괴롭힘과 성희롱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며 “우월적 지위를 악용하는 행위자 문제이자 동시에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노동관계,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회사와 이를 내버려두는 행정당국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직장갑질119 측은 “직장 내 성희롱 대부분이 권력관계 속에서 발생하고, 사용자가 가해자인 사례도 많은 현실을 고려하면 성희롱 피해자가 객관적이고 실효성 있는 독립된 기구를 통해 조사와 실질적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체는 직장 내 성희롱을 해결하려면 △직장의 민주화와 고용 형태 간 차별 해소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법 해석·집행 △성희롱 행위자·피해자 범위 확대 △사용자 책임 강화 △구제 절차의 실효성 확보 △불리한 처우 처벌 강화 등 제도 개선 등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박순엽 (so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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