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면에 든 현대家 1세대..2·3세 경영 가속화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타계하면서 범(汎) 현대가 창업 1세대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현대그룹 창업주이자 '왕회장'으로 불린 정주영 명예회장을 필두로 영(永)자 돌림 1세대 형제들은 한국 근현대 산업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다는 평가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아버지 정봉식과 어머니 한성실씨 사이에서 6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한국 대표 기업 '현대'를 창업해 우리나라 창업 1세대이자 한국 경제발전 기틀을 닦은 거목으로 일컬어진다.
해방 1년이 지난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하면서 건설업의 잠재력에 눈떴다. 이듬해 현대건설의 전신 '현대토건사'를 설립, 이를 기반으로 6.25 전후 복구사업을 수행하면서 한국 경제사 전면에 등장했다. 이어 자동차와 중공업, 전자 등 국가 기간산업분야에 과감히 진출했고 명실공히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주역 기업인 중 한명으로 올라섰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이력이 있고 1998년 84세 고령에 소떼를 이끌고 방북을 성사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시작하는 등 남북간 경제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데도 일조했다.
전날 숙환으로 별세한 정상영 명예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이다. 1936년 강원도 통천 출생으로 한국 재계에서 창업주로선 드물게 60여 년을 경영일선에 몸담았다. 국내 기업인 중 가장 오래 경영현장을 지킨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1958년 금강스레트공업이란 이름으로 KCC를 창업했다. 1974년 고려화학을 세워 유기화학 분야인 도료 사업에 진출했고 1989년에는 건설사업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 건설)을 설립했다. 2000년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해 금강고려화학㈜으로 새롭게 출범한 이후, 2005년에 금강고려화학㈜을 ㈜KCC로 사명을 변경해 건자재에서 실리콘, 첨단소재에 이르는 글로벌 첨단소재 화학기업으로 키워냈다.
1976년 현대건설 사장직 내놓고 퇴사해 중공업 중심의 '한라그룹'을 창업했으며 시멘트와 건설, 조선소, 제지, 중장비 등 생산 계열사를 잇따라 설립해 한 때 한라를 재계 12위 그룹으로 키우기도 했다.
범 현대가 1세대 중 3남인 고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은 2005년 83세 일기로 별세했다. 1970년 현대건설 부사장까지 올랐고 이후 현대건설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았다. 이를 모태로 성우그룹을 키웠는데 1987년에 자동차 부품회사 성우오토모티브를, 1995년에 성우종합레저를 설립했다.
4남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1928년생으로 2005년 눈을 감았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아버지이자 '포니정'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큰 형의 일을 돕다 1967년 현대차를 설립한 뒤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자동차 외길 인생이 시작됐는데 1968년 현대차 1호차인 코티나를, 1974년 국내 최초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1999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으로 취임해 건설인으로 제 2의 인생을 걸었다.
왕 회장의 여동생 고 정희영 여사는 1925년생으로 지난 2015년 타계했다. 남편은 고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이다.
범현대가 경영권은 이제 '몽(夢)'자 돌림 2세대에서 '선(宣)'자 돌림 3세대로 승계가 가속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다. 현대가 장자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외아들로 지난해 10월 회장직에 올랐다.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에 오른지 2년 만에 '정의선 시대'를 본격 개막한 것이다.
모빌리티(이동수단) 환경 대변혁기를 맞아 정 회장은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신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현대차·기아를 글로벌 5위 완성차 업체로 키워냈다면 정의선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향후 내연기관 중심에서 탈피해 독보적인 글로벌 미래 모빌리티 기업 반열로 도약할 숙제를 안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딸들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 정명이 현대커머셜 총괄대표 및 현대카드 브랜드부문 대표, 정윤이 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사장도 활발하게 경영활동에 참여 중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3남 정몽근 명예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2006년 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장남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동생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과 함께 그룹을 이끌고 있다.
4남인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아들로는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과 정문선 현대비앤지스틸 부사장, 정대선 HN그룹(전 현대BS&C) 사장 등이 있다.
5남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슬하 자녀들도 모두 중책을 맡고 있거나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장녀 정지이 현대무벡스 전무, 정영이 현대무벡스 차장, 정남 정영선 현대투자파트너스 이사 등이다.
6남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도 현재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연내 상장 계획을 밝힘과 동시에 증시에서 모은 자금 등을 활용해 친환경 선박에 최대 1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상영 KCC 명예회장도 무리 없이 경영권 승계 작업을 마쳤다. KCC는 장남 정몽진 회장이, KCC글라스는 둘째 정몽익 회장이, KCC건설은 셋째 정몽열 회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범현대가로 분류되는 한라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도를 겪었지만 정인영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 정몽원 회장이 2008년 만도를 사들이면서 그룹 재건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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