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뉴 아메리카] 바이든의 행정명령, 트럼프의 행정명령 / 유혜영

한겨레 2021. 1. 3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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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유혜영 ㅣ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

요즘 미국 뉴스를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행정명령’(Executive Orders)이다.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내리는 명령이다. 미국 헌법에 규정된 권한에 따라 대통령은 행정부 각 부처에 현행법이나 규제를 집행하는 방식을 공식적으로 지시할 수 있다. 행정명령은 의회의 입법 또는 비준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대통령으로선 단독으로 정책을 펼 수 있는 수단이다.

1월20일 정오에 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 바이든은 그날 오후 백악관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무려 9개의 행정명령(행정조치 등 포함하면 첫날 17개)에 서명했다. 코로나19 대응부터 이민 정책, 기후변화, 인종과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철폐에 이르기까지 분야와 영역도 다양했다. 취임 첫 주로 시기를 넓히면 바이든의 행정명령만 22개에 이른다. 당분간 바이든 대통령에 관한 뉴스는 곧 행정명령에 관한 뉴스가 될 것이다.

미국 최초의 행정명령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9월22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발표했다. 남부연합 주에 거주하는 흑인 노예들은 1863년 1월1일자로 자유의 몸이라는 내용의 역사적인 ‘노예해방 선언’이 미국의 첫 행정명령이었다. 한국과 달리 미국 행정부는 법안을 발의할 수 없다. 그래서 행정명령은 대통령이 선거 공약을 이행하거나 정책을 집행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로 쓰였다. 대공황 이후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2년 동안 집권하면서 무려 3721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명령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최근 특히 커졌는데, 도널드 트럼프가 한몫했다.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주일 만에 무슬림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6개국 국민들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재임 기간 한해 평균 55개로 전임자들보다 특별히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무슬림 입국 금지나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처럼 그 내용이 매번 논란이 됐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념 격차가 커지면서 의회가 더 양극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상대방을 타협의 대상이나 합의한 룰에 따라 경쟁하는 상대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되면 입법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 하원 의석 차는 더 줄었고, 상원은 아예 50 대 50으로 갈렸다(부통령이 상원의장을 겸하기에 다수당은 민주당). 이러면 의회는 활발한 협의를 통해 법을 만들기보다는 교착 상태에 빠지기 쉽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도 행정명령에 많이 기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행정명령을 통한 통치는 대립하는 의회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빨리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감수해야 할 위험과 비용도 크다.

우선 행정명령의 ‘수명’이 의회의 표결을 거친 정책보다 훨씬 짧다. 1937~2013년 서명된 6153개의 행정명령 중 51%가 후임자에 의해 폐지되거나 수정됐다. 바이든은 행정명령을 통해 트럼프의 흔적을 빠르게 지우고 있다. 그런데 만약 바이든 대통령의 후임이 다시 공화당 대통령이 된다면? 바이든의 정책도 쉽게 지워질 것이다.

둘째, 미국 시민들이 행정명령을 국회를 통과한 법만큼 무겁게 여기지 않는다. 백악관 참모들의 회의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대통령 개인의 결단인 행정명령을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와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한다고 여기는 미국인도 적지 않다. 또한 행정명령은 바이든이 계속해서 강조해온 ‘통합’의 메시지를 무색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의회나 야당과의 대화, 타협을 건너뛴 행정명령이 계속 나온다면 트럼프를 지지한 7400만명의 유권자는 자신의 의사가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코로나19, 경기 회복과 같이 산적한 과제 앞에서 바이든 행정부에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 행정명령은 자칫 남발할 경우 역효과와 부작용을 우려해야 하는 양날의 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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