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라고 불러봐"..'직장 내 성희롱' 신고 후 불이익 90%

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2021. 1. 31. 1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직장갑질119 제보 400여건 전수분석..3분의 1은 '사용자'
'다른 괴롭힘도 수반' 68%..피해자는 8할 이상이 여성
신고율은 30%대 그쳐..되려 징계, 해고 처분 58% 달해
"성평등한 근무환경 만들고 구제절차 실효성 확보해야"
연합뉴스
#1. "입사하고 하루 만에 말 놓자며 '오빠'라고 부르래요. 업무 중에 갑자기 와서 머리를 쓰다듬거나 얼굴을 감싸는 등 원하지 않는 접촉을 해요. 안 되겠다 싶어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저 이전에 퇴사했다는 여성직원들도 당했고, 지금 일하고 있는 동료들도 모두 겪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2. "가해자는 모든 직원이 기피하는 상사입니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 '무슨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냐' 등의 모욕은 일상이고, '입술이 왜 이렇게 빨갛냐', '치마 길이가 너무 짧다' 등 불쾌한 성희롱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밖에도 본인이 기분이 나쁘면 서류를 집어던지거나 아무나 트집을 잡아 괴롭히기도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사측에) 보고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습니다."

지난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검찰조직 내 성추행을 폭로하면서 국내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지 어언 3년.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직장 내 성희롱'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 제공
31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단체 출범 직후인 지난 2017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신원이 확인된 제보 1만 101건을 살펴본 결과, '직장 내 성희롱'이 486건(4.81%)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성희롱 피해는 대부분 직장 내 수직적 위계관계에 기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자세한 피해내용까지 확인이 가능한 364건의 제보를 분류, 분석한 결과 가해자가 피해자의 상사인 경우는 89%(324건)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가해자가 사업주나 대표이사처럼 피해자에 대한 고용 권한을 쥔 '사용자'인 사례가 29.4%(107건)에 달했다.

회사에서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들은 대개 또다른 '갑질'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 외 다른 직장 내 괴롭힘도 있었다고 밝힌 사례는 68.7%(250건)로 조사됐다. 한 사람에 의해 여러 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례도 22%로 파악됐다. 피해자는 여성이 83.2%로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남성도 12.9%로 집계돼 적지 않은 수치를 기록했다.

직장갑질119는 "성희롱 문제는 직장 내 위계관계 속 우월한 지위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단호하게 조치하지 않으면 다수의 직원에게 반복된 피해를 주게 된다"며 "이 때문에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엄격히 처벌하고 재발방지를 하는 것이 관건이다. 피해자를 철저히 보호해 마음 놓고 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제보사례 중 본인의 성희롱 피해를 신고했다는 비율은 37.4%(136건)에 그쳤다. 이마저도 신고 후 모종의 '불이익'을 받았다는 경우가 90.4%(123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측의 후속조치도 미비해 조치의무를 위반한 사례가 41.5%(51건)으로 조사됐고, 오히려 피해자가 징계·해고 등의 처분을 받은 경우도 58.5%(72건)나 됐다.

연합뉴스
제보자 A씨는 "저는 성희롱 신고부터 징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사 및 징계권한자들과 면담을 해본 적이 없다. 가해자만이 그들과 계속 소통했다"며 "사건을 처리하는 동안 성희롱 및 직장 내 따돌림을 조성했던 사람과 같이 근무해야 했다. 징계가 정당하게 내려지기만을 기다렸는데, 결과를 보니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부탁으로 상사의 성추행을 고발했던 B씨 역시 "회사는 신고한 사실을 가해자에게 바로 전달하고 피해자에 대해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결국 피해자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회사를 그만뒀고, 가해자는 저를 사사건건 괴롭히고 있다"고 토로했다.

직장갑질119는 현행법상 △고용관계가 있는 사업주의 직장 내 성희롱만 처벌규정이 있는 점 △근로계약을 맺은 '법정 노동자'만 피해자로 인정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다양한 권력관계와 근로환경을 고려해 피해인정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구제 관련 규정이 별도로 없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이들은 "성희롱 피해자가 객관적이고 실효성 있는 독립된 기구를 통해 조사와 실질적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그밖에 사건 발생 후 일어나는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조치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근본적 해결책으로는 △민주적 직장을 만들고 고용형태 간 차별을 해소하는 것 △여성의 채용기회를 확대하고 성평등한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것 △소관부처인 고용노동부가 법을 제대로 해석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 언급됐다.

법적으로도 △직장 내 성희롱 예방 △행위자와 피해자 범위 확대 △사용자와 행위자의 책임 강화 △구제절차의 실효성 확보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 시 처벌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직장갑질119 윤지영 변호사는 "직장 내 성희롱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적 관계에서 우연히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월한 지위를 악용하는 행위자의 문제이며, 동시에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노동관계,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회사와 이를 방치하는 행정당국의 문제"라며 "사용자는 성희롱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사용자가 위임하는 권력 남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유럽연합(EU)의 권고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